이소사 아가타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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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이소사 아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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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 : 과부순교일 : 1839-05-24관련성지 : 서소문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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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사는 경기도 이천 출신으로 17세 때 결혼하였으나 남편을 여의고 친정으로 돌아와 살면서 어머니, 동생 이호영과 함께 입교하였다. 아버지가 대세를 받고 사망하자 동생을 따라 서울로 이사하였는데, 1835년 2월(음력 정월) 한강변 무쇠막에서 동생 이호영 베드로와 함께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여인으로는 차마 견디기 힘든 형벌과 고문을 참아 냈고 형조로 이송되어 동생과 함께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사형 집행이 연기되어 옥살이를 더 해야 했다. 고통스러운 옥중 생활 속에서도 동생과 함께 한날 한시에 순교하자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인내와 극기로써 생활하였다. 동생을 먼저 순교의 영광을 입게 하고 자신은 동생이 옥사한 지 7개월 후인 1839년 5월 24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8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56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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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혁 다미아노
관리자 0 0 0 3518 2017.01.16
신분 : 회장순교일 : 1839-05-24관련성지 : 서소문 밖서울에서 태어난 남명혁은 젊어서 무뢰배들과 어울리며 매우 난폭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나 30세경 입교한 뒤로 모든 세속의 나쁜 일과 손을 끊고 오직 신앙 생활에만 전념하였다. 유방제(劉方濟)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더욱 열심히 살아 이광헌과 함께 회장으로 임명되어 예비신자를 모아 가르치고 병약자들을 방문하였으며 또 ‘성의회`(聖衣會)라는 신심 단체에 가입하여 신부를 도와 교회 일을 열심히 하였다. 그는 1839년 기해박해 초 한 예비신자의 밀고로 4월 7일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이 때 그의 집에서 제의류(祭衣類), 경본(經本), 주교관(主敎冠) 등이 발견되어 포청과 형조의 관원들에게 매우 혹독한 형벌을 당했다. 그러나 남명혁은 모든 고통을 참아 냈고, 함께 체포된 아내에게 “이 세상은 잠시 머무는 곳이고 우리의 본향은 천국이니 주님을 위하여 죽어서 광명한 곳에서 영원히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고 격려의 편지를 써 보낸 뒤 5월 24일 이광헌 등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평소 ‘성의회의 치명자 남 다미아노’로 불리기를 바랐던 남명혁은 한창나이인 38세에 자신의 뜻대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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