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치백 요셉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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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임치백 요셉

관리자 0 3616 0
신분 : 사공순교일 : 1846-09-20관련성지 : 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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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집’(君執)으로도 불리던 임치백은 한강변의 한 부유한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830년에 천주교를 알았으나 입교하지는 않았고, 천주교와 천주교인을 호의적으로 대하기만 하였다.

1846년 5월 아들 임성룡이 김대건 신부와 함께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이 갇혀 있는 옹진으로 가서 천주교인이라 속이고 자수하였다. 며칠 뒤 서울로 이송되어 포청에서 김대건 신부를 만나 교리를 배우고 곧 세례를 받아 순교를 결심하였다. 마침내 9월 20일 정오부터 해가 질 때까지 매를 맞고, 6명의 교우와 함께 43세의 나이로 교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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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안드레아
관리자 0 0 0 8016 2017.01.16
신분 : 신부순교일 : 1846-09-16관련성지 : 새남터김대건은 1821년 충청도 솔뫼에서 천주교 신자 김제준 이냐시오와 고 우르술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굳센 성격과 진실한 신심을 보고 1836년 나 베드로(모방) 신부는 그를 신학생으로 뽑아 마카오로 유학 보냈다. 그는 6년 동안 신학 공부를 하고 1845년 8월 페레올 주교에게서 사제품을 받아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고국에 돌아온 김 신부는 서울과 용인 지방에서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1846년 음력 4월 주교의 명에 따라, 선교사들의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선교사들의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황해도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 김 신부는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돌아오는 도중 순위도에서 관헌에게 체포되어 서울 좌포도청으로 이송되었다. 취조 중, 김 신부의 넓은 식견과 당당한 태도에 대관들은 그를 죽이기에는 국가적으로도 아깝다고 생각하였으나 후환을 입을 것이라는 영의정 권돈인의 주장대로 결국은 사형을 선고하였다. 김 신부의 처형은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의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김 신부는 망나니들에게 `천주교인이 되어 내가 있을 곳에 오도록 하라.`는 말을 남기고 태연하게 칼을 받았다. 이 때 그의 나이 26세, 그의 목이 떨어지자 형장에는 큰 뇌성과 함께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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