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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률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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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66-02-17관련성지: 평양유정률은 평남 대동군 율리면 답현리(畓峴里, 일명 논재)에서 태어나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짚신을 엮어 팔며 어려운 생활을 하였다. 1864년경 교리를 배우고 서울로 올라와 장 시므온(베르뇌) 주교에게 세례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온 뒤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며 극기하고 인내하는 생활을 하였고, 그의 달라진 모습을 본 아내도 감동하여 입교하게 되었다. 1866년 초 박해가 일어났다는 소문을 들은 유정률은 친척들에게 세배하면서 자신의 순교를 예감한 듯 “안녕히 계십시오. 지금 헤어지면 언제 다시 뵐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인사하였는데, 과연 그 날 저녁 이웃 마을인 고둔리의 공소에서 교우들과 함께 성서를 읽다가 체포되어 평양 감영으로 끌려갔다. 유정률은 이미 체포된 100여 명의 교우와 함께 문초를 받았고, 다른 교우들은 혹형과 고문을 이기지 못하여 배교하였지만 그는 홀로 신앙을 지켰다. 이에 분노한 감사는 배교한 교우 100여 명을 시켜 그를 세 대씩 때리게 하였다. 결국 체포된 다음 날인 2월 17일, 유정률은 300여 대의 매를 맞고 3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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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바르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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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과부순교일: 1839-09-03관련성지: 서소문 밖경기도 봉천(奉天)에서 태어난 이정희는 과부가 되어 돌아온 고모 이매임(李梅任)의 권면으로 어려서 어머니 허계임(許季任), 동생 영희(英喜)와 함께 입교하였다. 그 뒤 열심한 신앙 생활을 하며 동정으로 살아갈 것을 결심하였다. 혼기에 이르러 아버지가 외교인 청년과 결혼시키려 하자 병을 핑계삼아 3년을 버틴 뒤 교우 청년과 결혼하였다. 그러나 결혼한 지 2년 만에 남편을 잃고 잠시 친정에 있다가 신앙 생활을 위하여 집을 떠나 서울에 있는 고모 이매임의 집에 와서 살았다. 1839년 기해박해 시초에 남명혁과 이광헌의 어린 자녀들이 혹형과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감동하여 당시 이매임의 집에 머물던 김성임(金成任), 김 루치아 그리고 어머니, 동생, 고모 등과 함께 순교를 결심하고 4월 11일 남명혁의 집을 지키고 있던 포졸에게 묵주를 내보이며 천주교인임을 밝혔다. 9월 3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다섯 명의 교우와 함께 순교하였다. 그 때 나이는 4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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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간난 아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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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과부순교일: 1846-09-20관련성지: 옥사서울의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난 이 아가타는 18세 때 혼인하였다가 3년 만에 과부가 되어 친정으로 돌아왔다. 이 때 외할머니의 권유로 교리를 배우고 유방제(劉方濟)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1846년 병오박해가 일어나자 현석문 회장이 마련한 집에 숨어 있다가 7월 11일에 현석문, 김임이, 정철염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9월 20일에 6명의 교우와 함께 33세의 나이로 교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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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이 막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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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과부순교일: 1839-12-29관련성지: 서소문 밖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난 한영이는 혼기에 이르러 권 진사(進士)라는 양반의 후처로 들어가 딸 권진이(權珍伊)를 두었고, 남편이 대세를 받고 죽으면서 천주교를 믿으라는 유언을 남기자 딸과 함께 입교하였다. 그 뒤 신앙 생활을 하고자 딸과 함께 집을 나와 교우들 집에 몸붙여 살다가 1839년 7월 17일 딸과 딸의 친구인 이경이(李瓊伊)와 함께 체포되었다. 12월 29일 6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그의 나이 56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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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페르 브르트니애르 유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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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신부순교일: 1866-03-07관련성지: 새남터1866년 병인 박해 때에 순교한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인 백 신부는 프랑스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1864년에 사제가 되었다. 수품 직후 동료인 김 헨리코, 민 루가, 서 루도비코 신부와 함께 고국을 떠나 이듬해인 1865년 5월 조선에 입국하였다. 서울에 도착한 백 신부는 정의배(丁義培) 회장의 집에 머물며 한국말을 배워, 박해가 시작될 무렵에는 교우들에게 고해성사를 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는 정 회장이 체포된 다음 날인 1866년 2월 26일 장 주교의 하인이었던 이선이(李先伊)의 고발로 체포되어 갖은 문초와 형벌을 받았고, 3월 7일 새남터에서 28세의 나이로 장 주교와 함께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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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렬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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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공인순교일: 1839-07-20관련성지: 서소문 밖‘경삼’으로도 불렸던 이광렬은 명문 양반인 광주 이씨의 후예로 태어났다. 22세쯤 형 이광헌과 함께 입교한 뒤 헌신적으로 교회 일에 참여하였으며, 정하상(丁夏祥), 조신철(趙信喆), 유진길(劉進吉) 등과 함께 북경을 왕래하며 나 베드로(모방) 신부, 정 야고보(샤스탕) 신부 등을 맞아들였다. 북경에서 세례성사를 받고 귀국한 뒤로는 육식을 끊고, 극기와 인내로 동정을 지키며 생활하였다. 1839년 4월 7일 체포되어 혹형과 고문을 받았으나 모두 이겨 내고,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45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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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주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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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40-02-01관련성지: 당고개명문 양반의 후예로 서울에서 태어난 홍영주는 충청도 내포(內浦) 지방의 여사울에서 자랐다. 대대로 이어온 신앙을 이어받아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였고, 형 홍병주(洪秉周)와 함께 충청도 내포 지방의 회장으로 교회 일에 헌신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고 서양 신부들이 체포된 뒤 9월 말에 이르러 홍영주는 형과 함께 서양 신부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죄로 체포되었다. 1840년 2월 1일, 하루 먼저 순교한 형의 뒤를 따라 2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39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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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임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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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6
신분 : 부인순교일 : 1839-07-20관련성지 : 서소문 밖20세에 과부가 되어 경기도 봉천(奉天)의 친정으로 돌아온 이매임은 한 동네에 사는 여교우의 전교로 천주교에 입교한 뒤 조카 이정희와 영희를 신앙의 길로 인도하였다. 이영희가 동정 생활을 결심하여 서울로 피신하자 함께 따라가 살며 신앙 생활을 하다가, 1839년 4월 초 이매임은 남명혁과 이광헌의 어린 자녀들이 혹형을 이겨 내고 신앙을 지켰다는 이야기에 감동하여 순교를 결심하였다. 마침내 4월 11일 자수하여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순교하니, 그 때 나이 52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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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루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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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동정녀순교일: 1839-07-20관련성지: 서소문 밖동정 순교자 김 루치아는 강원도 강촌(江村)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어머니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14세 때 동정을 지킬 것을 결심하였고, 부모를 여읜 뒤로는 자신을 받아 주는 교우들의 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살았다. 1839년 기해박해 때 포졸들에게 자수한 뒤, 포청과 형조에서 천진한 태도와 한결 같은 신앙으로 모든 형벌과 고문과 유혹을 참아 냈고, 교리에 대한 심문 중에도 기막힌 비유와 논리정연한 대답으로 형관을 감동시켰다. 7월 20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22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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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주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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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40-01-31관련성지: 당고개서울 명문 양반가에서 태어난 홍병주는 1801년 신유박해로 할아버지 홍낙민(洪樂敏)이 순교하자 아버지를 따라 충청도 서산으로 이사하여 그 곳에서 자랐다. 조상부터 지켜 온 신앙을 물려받아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였으며, 동생 홍영주(洪永周)와 함께 충청도 내포 지방의 회장이 되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9월말 동생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에서 몇 차례의 고문을 당한 뒤 형조로 이송되었는데, 친척인 형조판서는 인정상 직접 신문하지 않고 하관(下官)에게 모든 수단을 다 써서 홍병주, 영주 형제를 배교시키라고 명령하였다. 이에 홍병주는 가장 지독한 형벌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끝까지 버티어 냈고 결국 1840년 1월 31일 5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참수형을 받아 42세의 나이로 동생보다 하루 먼저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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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기 바르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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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6
신분 : 과부순교일 : 1839-05-24관련성지 : 서소문 밖한아기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 교리를 배웠으나 성장하면서 세속의 일에 마음이 빠져 어머니의 모범과 권면을 무시하고 외교인과 혼인하였다. 그러나 우연히 친정에서 만난 김업이(金業伊)에게 교리를 다시 배우게 되었고, 30세에 남편과 세 자녀를 모두 여의고 친정으로 돌아와 신앙 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러던 중 1836년 10월 김아기, 김업이 등과 함께 천주교 서적을 숨긴 죄로 체포되었다. 포청과 형조에서 혹형과 고문을 당하면서도 형관에게 천주 십계를 강론하고 의연히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형집행의 유예로 3년을 옥살이한 후 1839년 5월 24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 때 나이 48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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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소벽 막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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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부인순교일: 1840-01-31관련성지: 당고개서울의 교우 가정에서 태어난 손소벽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아버지가 순교하고 또 어머니마저 일찍 세상을 떠나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17세 때 최창흡(崔昌洽)과 혼인하였으며, 1821년 전국에 콜레라가 퍼지자 남편과 함께 대세를 받고 성체를 모시고부터는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6월, 손소벽은 가족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사위 조신철(趙信喆)이 북경에서 가져온 교회 물건의 출처 때문에 포청에서 주리 세 차례, 태장 260대를 맞는 혹형을 당하였으며, 형조에서도 세 차례의 형문(刑問)을 당하였다. 1840년 1월 31일 5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39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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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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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동정녀순교일: 1840-01-09관련성지: 옥사17세의 꽃다운 나이로 순교한 동정녀 이 아가타는 이광헌과 권희(權喜)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부모의 모범을 따라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였고, 또 일찍부터 동정을 지킬 결심을 하였다. 기해박해 초인 1839인 4월 7일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에서 혹형과 고문을 당한 뒤 형조로 이송되었으나, 형조에서는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포청으로 다시 보냈다. 포청에서는 부모가 배교한 것처럼 속여 이 아가타에게도 배교를 강요하였으나 조금도 굴하지 않고, 옥에서 만난 김 데레사와 함께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신앙을 지켜 나갔다. 9개월 동안 옥에 갇혀 있으면서 곤장 390대를 맞고, 1840년 1월 9일 김 데레사와 함께 포청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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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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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과부순교일: 1839-09-??관련성지: 옥사어려서 부모와 함께 입교한 이 가타리나는 14세 때 조(趙) 씨 성을 가진 외교인과 혼인하여 3남매를 두었다.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이 때 가타리나의 권고로 대세를 받았다. 1838년 말 자신이 살던 고장에 박해가 일어나자 가타리나는 집과 재산을 버리고 자녀들과 함께 서울로 올라가 조 바르바라의 집에서 같이 살았다. 그러던 중 1839년 기해박해 때, 주인집 세 모녀 그리고 자신의 큰딸 조 막달레나와 함께 체포되었다. 포도청에서 딸과 함께 신문을 받고 한 차례의 주리를 당한 다음 옥에 갇혔으나, 옥이 워낙 비좁고 불결하여 3개월이 지난 9월 어느 날 57세 나이에 염병으로 옥사,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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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사 체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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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과부순교일: 1839-11-23관련성지: 옥사유 체칠리아는 명도회장 정약종(丁若鍾)의 부인이며 성 정하상(丁夏祥) 바오로의 어머니이다. 상처한 정약종과 20세에 혼인하여, 남편의 권면으로 혼인 3년 만에 세례성사를 받았다. 1801년 신유박해로 남편과 전실 아들 정철상(丁哲祥)이 순교한 뒤 재산을 몰수당하고 마재에 살던 시동생 정약용(丁若鏞)의 집에서 지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났을 때 조카의 피신 권유를 거절하고 7월 11일, 아들 정하상, 딸 정정혜(丁情惠)와 함께 체포되었다. 유 체칠리아는 79세의 고령임에도 포청에서 곤장 230대를 맞는 혹형을 받았으나 용감히 참아 냈다. 노인을 사형시키는 것이 국법에 금지되어 있어서 여러 달 동안 옥에 갇혀 있다가 11월 23일 고문과 형벌의 여독으로 옥사, 순교하였다. 103위 성인 가운데 최고령 순교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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