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순 루치아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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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박희순 루치아

관리자 0 3397 0

 


신분 : 동정궁녀
순교일 : 1839-05-24관련성지 : 서소문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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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녀이며 순교자인 박희순은 뛰어난 미모와 재주 때문에 어려서 궁녀로 뽑혀 궁궐에 들어갔으나, 어린 순조의 유혹을 용기와 덕으로 물리쳐 그 명성이 세간에 널리 퍼졌다. 30세경 천주교를 알게 되어 입교하였으나 궁녀의 신분으로는 신앙 생활이 어려워 병을 핑계로 궁궐을 나왔다. 그 뒤로 조카의 집에 살면서 언니 박 큰아기와 조카의 식구들을 입교시켰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천주교인으로 밀고되자 박희순은 조카의 가족들과 함께 전경협(全敬俠)의 집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4월 15일 전경협의 집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함께 체포된 많은 사람들이 혹형과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배교하였으나 박희순은 언니, 전경협과 함께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또한 다리가 부러지고 골수가 흐르는 만신창이의 몸으로 교우들에게 권면의 편지를 써 보내 교우들을 감동시키기도 하였다. 이러한 열정적인 신앙으로 모든 고통을 이겨 낸 박희순은 5월 24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39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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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헌 아우구스티노
관리자 0 0 0 3442 2017.01.16
신분 : 회장순교일 : 1839-05-24관련성지 : 서소문 밖이광헌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여러 순교자를 낸 광주(廣州) 이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청년 시절에는 매우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나 30세경 입교한 뒤로는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여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거듭되는 박해로 가산을 전부 잃고 순교할 때까지 10여 년을 궁핍하게 살면서도 회장직에 충실하고 또 냉담자를 권면하고 병약자를 위로하며 외교인에게 전교하였다. 그리고 범 라우렌시오(앵베르) 주교와 신부들을 자신의 집에 맞아들여 교우들을 미사에 참여하게 하고 강론을 듣게 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 초 어떤 예비신자가, 체포된 자기의 아내를 석방시키는 조건으로 이광헌을 포함한 53명의 교우 명단을 포졸에게 건네 주어 이광헌은 4월 7일 전가족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으로 끌려갔다. 포청에서 형문(刑問)을 마친 후 4월 18일 형조로 이송된 그는 배교하면 가족들과 함께 석방시켜 주겠다는 형관의 유혹을 뿌리치고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아 온 몸이 피범벅이 되었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켜 냈다. 형조에서 혹형과 고문을 이겨 낸 뒤 5월 24일 남명혁(南明赫) 등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53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장성집 요셉
관리자 0 0 0 3343 2017.01.16
신분 : 환부순교일 : 1839-05-26관련성지 : 포청옥서울에서 태어나 한강변 서강(西江)에서 살았던 장성집은 30세경에 교리를 배우고 예비신자로 열심히 생활하였다.그러나 점차 교리에 회의를 품어 신앙 생활을 중지하고 세속 향락과 재산 모으는 일에 몰두하였다.교우들의 권면과 가르침으로 회개한 뒤로는 자신의 죄를 보속하고 세속의 유혹을 피하기 위하여 방에 틀어박혀 추위와 굶주림을 무릅쓰고 기도와 성서 연구에만 전념하였다. 이러한 태도에 집안 어른들이 “예전처럼 자유롭게 드나들며 생활하는 것이 너의 신앙 생활에 무슨 방해가 되느냐?" 하고 만류하자 장성집은 “제가 전에 지은 죄는 모두 욕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시 그런 죄를 짓는 것보다는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는 편이 더 낫습니다." 하며 자신의 뜻이 변할 수 없음을 밝혔고, 마침내 1838년 4월 세례와 견진 성사를 받았다. 굳은 결심으로 신앙에 귀의한 장성집은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순교할 목적으로 자수를 결심하였다가 대부의 만류로 자수하지 않았지만 며칠 뒤인 4월 6일 체포되었다.중병이 들어 포졸들이 가마에 태우려 하였으나 장성집은 포청까지 걸어서 갔다. 포청에서도 신문하는 형관에게 맑은 정신으로 교리를 자세히 설명하고 혹형과 고문을 참아 냈다. 그 뒤 장성집은 5월 26일 마지막으로 치도곤 25대를 맞고 옥사함으로써 순교하였다. 그 때 그의 나이 54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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