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바르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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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이정희 바르바라

관리자 0 3151 0
신분 : 과부순교일 : 1839-09-03관련성지 : 서소문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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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봉천(奉天)에서 태어난 이정희는 과부가 되어 돌아온 고모 이매임(李梅任)의 권면으로 어려서 어머니 허계임(許季任), 동생 영희(英喜)와 함께 입교하였다. 그 뒤 열심한 신앙 생활을 하며 동정으로 살아갈 것을 결심하였다.

혼기에 이르러 아버지가 외교인 청년과 결혼시키려 하자 병을 핑계삼아 3년을 버틴 뒤 교우 청년과 결혼하였다.

그러나 결혼한 지 2년 만에 남편을 잃고 잠시 친정에 있다가 신앙 생활을 위하여 집을 떠나 서울에 있는 고모 이매임의 집에 와서 살았다.

  1839년 기해박해 시초에 남명혁과 이광헌의 어린 자녀들이 혹형과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감동하여 당시 이매임의 집에 머물던 김성임(金成任), 김 루치아 그리고 어머니, 동생, 고모 등과 함께 순교를 결심하고 4월 11일 남명혁의 집을 지키고 있던 포졸에게 묵주를 내보이며 천주교인임을 밝혔다. 9월 3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다섯 명의 교우와 함께 순교하였다. 그 때 나이는 4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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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삼 요한
관리자 0 0 0 3104 2017.01.17
신분: 승지순교일: 1866-03-07관련성지: 서소문 밖남종삼은 충청도 충주(忠州)에서 태어나 남상교(南尙敎)의 양자가 되었다. 1843년 문과에 급제하고 1846년 경상도 영해 군수가 된 남종삼은 항상 재물과 부녀자를 멀리하고 청백리(淸白吏)로서 의덕과 겸손의 청빈한 생활을 하여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나 동료 관리들에게는 시기와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관직에 따르는 미신행위로 인해 한때 교회를 떠난 적도 있었으나 다시 교회로 돌아와서는 신앙생활에만 전념했다.프랑스인 선교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고, 1863년 대원군의 명으로 정3품 승지(承旨)가 되어 왕족 자제의 교육을 맡았다. 그러던 중 1866년 러시아인들이 국경을 넘어와 통상을 요구하자 조정에서 문제거리로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때 남종삼은 홍봉주(洪鳳周), 이유일(李惟一)등과 논의 하여 영불(英佛) 동맹을 맺어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자는 소위 방아책(防俄策)을 대원군에게 건의했다. 대원군과 장 (베르뇌) 주교와의 면담이 이루어지는 듯 했으나 척신들의 압력, 장 주교와의 연락 지연, 중국에서의 천주교 박해 소문 등으로 실패했을 뿐더러 태도가 돌변한 대원군에 의해 병인 대박해가 일어나게 되었다.1866년 2월 고향인 제천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남종삼은 중도에서 자신의 수배령이 내려졌다는 소식을 듣고 경기도 고양군 축베더리로 피신했으나 2월 25일 주교의 하인 이선이(李先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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