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블뤼 안토니오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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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다블뤼 안토니오

관리자 0 4934 0
신분 : 제5대조선교구장주교순교일 : 1866-03-30관련성지 : 갈매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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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명은 ‘안돈이’(安敦伊)이며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이었던 안 안토니오 주교는 한한불(韓漢佛)사전을 비롯하여 많은 번역서와 저서를 남겼고, 10여 년 동안 자료를 수집하여 「조선 순교자 비망기」를 완성하는 큰 업적을 이룩하였다. 프랑스의 상류층 가정에서 자라나 한국 풍속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데다 위장병과 신경통에 시달렸지만, 한국말을 잘하고 보신탕을 즐기는 등 가장 한국적인 사제로 알려져 있다. 1845년 10월 조선에 들어와 20여 년 동안 양 떼를 위하여 봉사하던 안 주교는 1866년 3월 11일 홍주 거더리에서 체포되어 민 신부, 황석두와 함께 서울로 압송되었고, 유창한 한국말로 천주교에 대한 공격을 반박하여 다른 이들보다 더 심한 형벌을 받았다. 3월 30일에 안 주교 일행을 충청도 갈매못으로 압송한 형리들은 일행을 마을에 조리돌리며 형 집행을 지연시키려 하였지만, 마침 이 날이 주님 수난 성금요일이었으므로 안 주교가 당일 집행을 요구하여 그대로 형이 집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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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삼 요한
관리자 0 0 0 3103 2017.01.17
신분: 승지순교일: 1866-03-07관련성지: 서소문 밖남종삼은 충청도 충주(忠州)에서 태어나 남상교(南尙敎)의 양자가 되었다. 1843년 문과에 급제하고 1846년 경상도 영해 군수가 된 남종삼은 항상 재물과 부녀자를 멀리하고 청백리(淸白吏)로서 의덕과 겸손의 청빈한 생활을 하여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나 동료 관리들에게는 시기와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관직에 따르는 미신행위로 인해 한때 교회를 떠난 적도 있었으나 다시 교회로 돌아와서는 신앙생활에만 전념했다.프랑스인 선교사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고, 1863년 대원군의 명으로 정3품 승지(承旨)가 되어 왕족 자제의 교육을 맡았다. 그러던 중 1866년 러시아인들이 국경을 넘어와 통상을 요구하자 조정에서 문제거리로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때 남종삼은 홍봉주(洪鳳周), 이유일(李惟一)등과 논의 하여 영불(英佛) 동맹을 맺어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자는 소위 방아책(防俄策)을 대원군에게 건의했다. 대원군과 장 (베르뇌) 주교와의 면담이 이루어지는 듯 했으나 척신들의 압력, 장 주교와의 연락 지연, 중국에서의 천주교 박해 소문 등으로 실패했을 뿐더러 태도가 돌변한 대원군에 의해 병인 대박해가 일어나게 되었다.1866년 2월 고향인 제천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남종삼은 중도에서 자신의 수배령이 내려졌다는 소식을 듣고 경기도 고양군 축베더리로 피신했으나 2월 25일 주교의 하인 이선이(李先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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