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1) 루카 조르다노의 ‘세네카의 죽음’

Pilgrimage News 성지순례 뉴스
홈 > Knowledges > Pilgrimage News
Pilgrimage News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1) 루카 조르다노의 ‘세네카의 죽음’

관리자 0 1590 0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1) 루카 조르다노의 ‘세네카의 죽음’

폭군 네로에 맞선 거장 철학자, 죽음 앞에서도 당당

 

 

루카 조르다노, ‘세네카의 죽음’(1684년), 캔버스에 유화(155×188cm), 루브르박물관, 파리.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의 한 장면’이라는 주제로 교회 역사에서 의미 있는 순간이 되었던 한 장면에 머물러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고 한다. 가능한 연대기 순으로 하겠지만 때로는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과 맞추어 과거의 그 순간을 꺼내 보기도 하겠다. 역사는 흐르는 것이라, 흘러온 만큼 또 흘러갈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발전을 향해 무한 질주하던 현 인류에게 ‘공동의 집’ 지구가 힘들다고, 그만 달리라고 제동을 건 사건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불편해진 여러 가지 상황이 그대로 생활이 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날마다 늘어나는 코로나19에 감염된 확진자와 사망자에 대한 정보를 이름이 아닌, 숫자로 확인하는 일상에서 생사의 경계에 선 우리가 오늘 무엇을 해야 할지 이정표가 되어주는 그림이 있어 소개한다. 이것은 또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의 정점에서 일어난 한 사건에 주목하고 있어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하겠다.

 

 

화가 루카 조르다노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된 루카 조르다노(Luca Giordano, 1634~1705)의 ‘세네카의 죽음’이다. 철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초연함과 그의 주변에서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한 제자들의 움직임이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그림을 그린 루카 조르다노는 바로크 시대 나폴리학파의 대표 화가다. 알려진바, 르네상스의 중심지는 피렌체이고 포스트-르네상스의 중심지가 로마라면 1600년대 바로크의 중심지는 나폴리였다. 카라바조, 존 로렌조 베르니니는 당시 나폴리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는 “Luca Fapresto”(루카 파프레스토), 즉 ‘루카는 빨리하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가졌다. 아무리 큰 제단화라도 하루 이틀을 넘기지 않을 만큼 신속하게 잘 그렸다고 한다. 라파엘로, 티치아노, 베로네세, 피에트로 다 코르토나는 물론 카라바조까지 훌륭한 선배들의 영향을 여러모로 받아 화사하면서도 묵직한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었다. 주제도 성경과 신화, 역사적인 사건 등 가리지 않고 화폭에 담았다.

 

그는 3000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고 나폴리, 로마, 피렌체, 마드리드, 파리 등 곳곳에 있다. 루브르에만도 ‘세네카의 죽음’ 외에 ‘동정녀의 결혼식’(1688), ‘목동들의 경배’(1688),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신 그리스도’ 등 9점이 있다.

 

 

스토아학파의 철인(哲人)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B.C.4~A.D.65)는 키케로(Cicero, B.C.106~43)와 함께 로마 철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1세기 중엽 대표적인 스토아학파 철인(哲人)으로 폭군 네로의 스승이기도 하다. 그는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태어나 일찌감치 로마의 정계로 진출하여 제국의 말단 공무원부터 원로원의 의원이 될 때까지 관직을 두루 거쳤다. 그 과정에서 다섯 명의 황제를 경험하였다.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그리고 네로다. 그는 연설을 잘했고, 훌륭한 연설로 사람을 움직이는 자를 황제들은 싫어했다. 폭군 칼리굴라는 그의 목숨을 노렸고, 황제가 먼저 살해당했다. 클라우디우스는 조카딸과 간통했다는 혐의로 그를 코르시카로 추방했다. 하지만 그는 거칠고 힘든 환경 속에서 자연과학과 철학에 더욱 정진했다.

 

8년 만에 네로의 어머니 아그리피나에 의해 복권되어, 54년, 네로가 16살에 황제가 되자, 그는 황제의 스승이며 로마의 최고 지성인으로 제국의 실질적인 통치자로 부상하였다. 세네카가 네로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던 때, 로마 제국은 근래 없는 평화의 시기를 맞았다. 그 시기에 국가 재정과 법률 개혁을 단행했고, 문화적으로도 라틴 문학이 꽃을 피웠다. 네로는 스승의 가르침대로 선정을 베풀어 주인이 노예들을 함부로 다루지 못하게 했다. 그 시기 네로도 시와 음악에 자질을 보이던 밝은 소년이었다. 나름대로 시도 잘 썼다고 한다. 훗날 로마를 불태운 것이 시상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런 네로를 변하게 한 것은 어머니가 정치적인 맞수가 되면서부터였다. 59년, 21살이 된 네로는 존속살해라는 비극을 시작으로 폭군이 되어갔다. 스승의 충고는 거슬렸다. 세네카는 ‘관용’이 로마 황제의 자질이라는 편지를 남기고 정계를 떠났다. 하지만 네로의 광기(狂氣)는 64년의 로마 방화와 그리스도인 박해로 이어졌고, 세네카는 황제 암살 모의에 동조했다. 네로 역시 가까이 있는 세네카보다 멀리 있는 세네카가 더 두려웠던 참이다. 연설의 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제 암살 모의가 발각되고, 세네카는 황제로부터 자결 명령을 받아야 했다. 그때 세네카의 나이 69세였다.

 

세네카는 철학에서 흔한 주제인 존재론이나 인식론 등에는 관심이 없었다. 스토아 철학은 금욕적인 삶과 이성을 발휘하여 자연과 세계의 법칙에 따르는 것이 특징이다. 더욱이 살아온 시대가 힘겨웠던 만큼 세네카는 주어져 버린 인간의 삶과 도덕에 천착했다. “인생살이처럼 어려운 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사는 법을 배울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많은 실용서를 내놓았다. 「서간집」, 「대화」 등의 저서와 「분노에 대하여」, 「행복한 삶에 대하여」,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등의 논술서 등이다. 그의 저서들은 훗날 단테와 ‘제2의 세네카’로 불린 몽테뉴를 비롯하여 루소, 흄 등에 이르기까지 두루 영향을 미쳤다. 화를 다스리는 법과 덕에 관한 것, 죽음에 관한 내용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의 종교관과 도덕철학은 네로 이후 계속되는 제국의 박해 속에서 많은 호교론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최후의 순간에도 시대의 진리 전해

 

이제 작품으로 들어가 보자. 빛은 현자를 비추고 있다. 그가 중심이다. 그는 광풍이 몰아치는 시대에 치열하게 살았고 그 속에서 사색했다. 그렇기에 평소 가르치던 대로 “죽음을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원로원으로부터 ‘로마의 적’이라는 선언을 받고 비 오는 새벽에 신하의 집으로 도망갔다가 죽은, 전혀 황제답지 못했던 네로의 죽음과는 대조적이다. 배경은 시대를 반영하듯 사방이 어둡다. 어둠 속에서 제자들은 서둘러 현자에게 집중하고 있다. 스승의 허름한 몸은 영적인 힘으로 지탱되고, 그의 가르침은 계속된다. 그래서 이 작품의 부제가 ‘철인의 작별’이다.

 

배경 속 기둥은 스토아철학의 흔들리지 않는 자세를 의미한다. 왼쪽 끝, 붉은 옷을 입고 공책에 뭔가 열심히 받아 적고 있는 사람 뒤,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은 황제의 자결 명령서를 들고 온 사람으로 보인다. 그의 담담한 표정이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대조를 이룬다.

 

노쇠한 철인의 죽음 앞에서도 시대의 어둠을 걷어내려는 듯 젊은 학도들의 열기가 발목 동맥을 자르고 밴드를 쥔 의사의 손에 들어간 힘과 복받치는 슬픔을 압도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5월 10일, 김혜경(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 그림 파일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것입니다.

원본 : https://www.wga.hu/art/g/giordano/2/seneca.jpg



0 Comments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3) 피터르 브뤼헬의 ‘일곱 가지 자비의 행위’

댓글 0 | 조회 1,531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43)피터르브뤼헬의‘일곱가지자비의행위’목마른이에게마실것을,헐벗은이에게입을것을…사랑을행하여라-피터르브뤼헬,‘일곱가지자비의행위’(1616),개인소장,벨기에… 더보기
Hot

인기 [교회사 숨은 이야기] 32. 정광수의 성물 공방

댓글 0 | 조회 1,529 | 추천 0
대궐 옆 동네 벽동에 집회소 만들어 미사 봉헌하고 성물 보급[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32. 정광수의 성물 공방2020.12.25발행 [1594호]▲ 「청구요람」에 … 더보기
Hot

인기 [교회사 숨은 이야기] 63. 황사영의 애오개 교회

댓글 0 | 조회 1,527 | 추천 0
사당 허물고 성물 제작소 운영하며 조선 교회 본당 역할[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63. 황사영의 애오개 교회2021.08.15발행 [1625호]손이 귀한 명문가의 유…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54) 프란체스코 포데스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의 선포’

댓글 0 | 조회 1,518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54) 프란체스코포데스티의‘복되신동정마리아의원죄없으신잉태교의선포’비오9세교황‘원죄없이잉태되신성모교리’반포하다-프란체스코포데스티,‘복되신동정마리아의원죄없…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8) 엘 그레코의 ‘성 마르티노와 걸인’

댓글 0 | 조회 1,512 | 추천 0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8) 엘 그레코의 ‘성 마르티노와 걸인’입고 있던 망토 잘라 헐벗은 걸인에게 주는 자선의 손길-엘 그레코(El Greco), ‘성 마르티노와 걸… 더보기
Hot

인기 [교회사 숨은 이야기] 19. 권철신의 결별 선언

댓글 0 | 조회 1,511 | 추천 0
거침없는 이벽의 기세에 이가환·이기양·권철신이 차례로 무너지다[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19. 권철신의 결별 선언2020.09.20발행 [1581호]▲ 이벽이 이가환…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27) 조르조 바사리의 ‘그레고리오 11세 교황의 로마 귀환’

댓글 0 | 조회 1,510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장면](27)조르조바사리의‘그레고리오11세교황의로마귀환’70년만에본향로마로돌아온교황,환영하는양떼들-조르조바사리,‘그레고리오11세교황의로마귀환’,1572/73,교…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세계사 한 장면] (36) 줄리오 바르젤리니의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의 신망을 거부하는 사보나롤라’

댓글 0 | 조회 1,504 | 추천 0
[명작으로보는세계사한장면](36) 줄리오바르젤리니의‘알렉산데르6세교황의신망을거부하는사보나롤라’종교개혁의불씨남긴두인물-줄리오바르젤리니,‘알렉산데르6세교황의신망을거부하는사보나롤라’(1…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20) 야코포 팔마 일 조바네의 ‘콘스탄티노플 점령’

댓글 0 | 조회 1,501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장면](20) 야코포팔마일조바네의‘콘스탄티노플점령’탐욕에눈이멀어형제도시를짓밟은비극의역사-야코포팔마일조바네,‘1204년4월13일,십자군에의한콘스탄티노플점령’,15…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22) 주세페 사르디의 ‘1122년 보름스 협약과 서임권 투쟁의 종식’

댓글 0 | 조회 1,500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22) 주세페사르디의‘1122년보름스협약과서임권투쟁의종식’성직자임명권갈등의극적인타협,교회우위를재천명하다-주세페사르디,‘1122년보름스협약과서임권투쟁의종…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10) 세바스티아노 리치의 ‘성모 성화 앞에서 기도하는 그레고리오 교황’

댓글 0 | 조회 1,489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장면](10) 세바스티아노리치의‘성모성화앞에서기도하는그레고리오교황’전염병의창궐…“주님,저희를돌보소서”-세바스티아노리치,‘로마에서페스트의소멸을위해성모께비는그레고리…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6) 자코포 주키의 ‘눈의 기적’

댓글 0 | 조회 1,477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장면](6)자코포주키의‘눈의기적’한여름에눈내린기적의언덕에성모마리아대성전을짓다-자코포주키,‘눈의기적’,1580년경,피나코테크,바티칸박물관,로마.로마에는4대대성전이… 더보기
Hot

인기 [교회사 숨은 이야기] 38. 밀정 조화진

댓글 0 | 조회 1,475 | 추천 0
신자로 위장한 밀정 조화진에 의해 내포 교회 핵심 세력 궤멸[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38. 밀정 조화진2021.02.07발행 [1600호]▲ 탁희성 화백이 그린 복…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9) 자크 루이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댓글 0 | 조회 1,472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장면](49)자크루이다비드의‘호라티우스형제의맹세’프랑스혁명의폭풍전야에그린로마영웅사,신고전주의를열다-자크루이다비드,‘호라티우스형제의맹세’(1784년),유화,루브르…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56) 무명화가의 삽화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한 비오 9세 교황’

댓글 0 | 조회 1,472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56)무명화가의삽화‘제1차바티칸공의회를소집한비오9세교황’세속권력은잃고교황의영적권위를얻은공의회-칼벤징거저,「1873년비오9세교황에관해서」에나오는‘1869… 더보기
Category
글이 없습니다.
State
  • 현재 접속자 158 명
  • 오늘 방문자 1,276 명
  • 어제 방문자 1,897 명
  • 최대 방문자 5,379 명
  • 전체 방문자 1,764,758 명
  • 전체 게시물 1,336 개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