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33)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다미아노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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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33)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다미아노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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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33)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다미아노 수도원’

 

프란치스코 성인·클라라 성녀 숨결 남아있는 곳

 

발행일2017-08-20 [제3058호, 13면]

 

 

 

성 다미아노 수도원과 수도원 뒤편으로 보이는 수바시오 산.

 

이탈리아 중부의 움브리아 지방 아시시(Assisi)는 프란치스코 성인(1181/1182~1226년)의 고향이며 활동 무대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철저히 따라 살았던 성인은 ‘제2의 그리스도’라 불리며, 신자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있다. 프란치스코는 ‘프랑스 사람’이란 뜻인데 포목상을 하던 아버지가 프랑스와 거래하며 그곳을 좋아하게 되어 아들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오늘날에도 세계 도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프란치스코의 삶과 신앙을 본받기 위해 아시시를 찾는다. 수바시오 산 중턱에 있는 중세 도시 아시시에 오르면 곳곳에 프란치스코 성인과 관련된 성당이나 경당, 유물과 유적지가 있어서 성인을 직접 만나는 것 같다. 아시시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성 클라라 대성당, 성 다미아노 성당 등은 사람들로 하여금 영적인 세계를 생각하게 해준다. 

 

특히 10세기 초에 건축된 프란치스코 대성당의 2층 내부 벽면에는 13~14세기의 이탈리아 미술을 대표하는 지오토(Giotto·1267?~1337년)의 프레스코 작품 ‘프란치스코 일생’ 등이 있다. 이런 명작들 때문에 대성당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아시시의 언덕에 오르면 움브리아 평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성인은 이런 곳에서 태어나는구나’라고 감탄할 정도로 전경이 아름답다. 그리 높지 않은데도 아래의 들판과 흩어진 마을이 작게 들어온다. 이 언덕에 오르면 세상의 이런 저런 욕심으로부터 조금은 벗어나게 되는 것 같다. 

 

성 다미아노 성당이 있던 자리에 다미아노 수도원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프란치스코가 “허물어져가는 나의 집을 고치라”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던 곳으로, 작은 형제회의 출발점이 되는 곳이다. 그는 이후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교회의 쇄신과 청빈을 강조하며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데 매진했다. 성인의 동반자였던 클라라(1194~1253년)가 수도생활을 할 수 있게 그곳에 수도원을 만들어 주었는데, 오늘날에는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이 수도원은 사각형으로 설계됐으며 가운데에는 소박한 정원과 우물이 있다. 1층에는 경당과 식당, 작업실과 공동 공간이 있고, 2층에는 벽에 걸린 십자가와 나무 침대뿐인 수도자들의 작은 방이 있다. 1층의 소박한 성당도 옛 모습 그대로이며 식당도 클라라 성녀가 살았던 당시의 모습대로 잘 보존돼 있다. 

 

 

 

성 다미아노 수도원의 식당과 성녀 클라라의 기적 벽화.

 

한쪽 벽에는 클라라와 교황을 비롯한 성직자들이 식사 전에 기도하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 1228년 어느 날 그레고리오 9세 교황과 일행이 다미아노 수도원을 방문해 식사를 하게 됐는데, 교황의 요청으로 성녀가 식사 전 기도를 바쳤다고 한다. 그러자 놀랍게도 식탁에 차려진 빵에 십자가 표시가 새겨졌다고 한다. 그림에는 식탁에서 일어난 기적의 순간이 묘사돼 있는데, 이 표시는 성녀의 삶이 주님과 강하게 일치돼 있음을 알려준다. 

 

 

 

사색의 언덕에서 명상하는 프란치스코 성인상.

 

다미아노 수도원에서 나오면 눈 아래 펼쳐진 움브리아 평원을 바라보며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사색의 공간이 있다. 이곳에는 황동으로 만들어진 프란치스코 성인 좌상이 있는데, 앉아서 깊은 명상에 빠진 듯한 모습이다. 

 

이 세상에서 프란치스코의 삶은 짧았지만 고통스러운 시간은 매우 길었다. 군대에서의 포로 생활과 아버지의 몰이해와 가출, 교회의 이해 부족과 수도원 창립 문제, 오상과 병고 등을 겪으며 살았다. 그러나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성인은 하느님을 향한 신앙의 길에서 조금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수많은 고통을 겪으면서도 프란치스코는 자주 이 언덕에 올라 하늘과 땅을 바라보며 하느님을 찬미했을 것이다. 동상 곁에 있으면 성인이 만들고 부른 ‘태양의 찬가’ 소리가 바람결에 들리는 듯하다. 

 

“오, 감미로워라. 가난한 내 맘에 한없이 샘솟는 정결한 사랑. 나 외롭지 않고 온 세상 만물 향기와 빛으로….”

 

프란치스코 성인과 클라라 성녀의 고향인 아시시는 그들의 유물과 유적을 잘 보존하고 전시해 곳곳에서 성인들의 면면을 만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곳을 찾아가 내적인 안정과 평화를 되찾고 돌아간다. 1986년부터는 아시시에서 ‘세계 종교인 평화 기도회’가 열려 이 도시를 더욱 빛내준다. 

 

우리나라 곳곳에도 각 교구에 성지가 있어 사람들이 즐겨 방문한다. 그러나 여러 성지 가운데서, 아시시처럼 내적인 안정과 평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성지의 원형보존보다도 개발을 앞세워 성지를 훼손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성지 곳곳에 꼭 필요하지도 않은 부속 건물을 세우거나 신심이 아니라 분심을 일으키는 성상을 가득 세워 놓아, 자신을 돌아보며 사색할 수 있는 영적인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아시시처럼 옛 수도원의 낡은 우물 하나라도 소중히 여겨 보존하며 아끼는 자세가 무분별한 성지 개발이나 무수한 성상 장식보다도 우선돼야 할 것이다.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받았다. 홍익대와 영국 뉴캐슬대에서 미술사·박물관학을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과 성미술 감독, 종로본당 주임, 장안동본당 주임 등을 역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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