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숨은 이야기] 16. 행간에 감춰진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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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숨은 이야기] 16. 행간에 감춰진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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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벌주려면 나도 같은 책을 읽었으니 함께 벌을 주시오”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16. 행간에 감춰진 뒷이야기

2020.08.30발행 [15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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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정복이 을사년 10월 9일에 쓴 친필 일기로 제6행에 이기성이 추조적발 당시 함께 참석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원본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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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수본 「벽위편」에 실린 하단 주석 내용으로 추조적발 사건이 하동의 역옥과 관련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변명의 속사정

을사추조적발 사건은 풀어야 할 뒷이야기가 적지 않다. 현재 전하는 두 종류의 「벽위편」 중 양수본(兩水本)의 첫 면에 성균관 동재(東齋) 유생 정서(鄭) 등이 사건 발생 직후에 낸 통문(通文)이 본문 없이 제목만 나온다. 이 통문은 을사추조적발 사건의 처리 경과를 지켜보다가 이들이 분개해서 성명을 밝히지 않은 채로 발표했던 글이었다. 이 글의 본문은 이만채 본 「벽위편」에 실려 있다. 본문이 빠진 양수본 「벽위편」의 글 제목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내용이 나온다.

“이때 사학(邪學)의 일이 하동(河東)의 역옥(逆獄)과 서로 이어졌다. 추조(秋曹)에서 김씨 성을 가진 중인을 심문하여 치죄(治罪)하면서부터 일이 장차 연루되려 하자, 5, 6인의 유생이 형조의 마당에서 스스로를 변명함이 있었다. 이 때문에 발문(發文)하여 이를 배척한 것이다.(時邪學事, 相連於河東逆獄. 自秋曹推治金姓中人, 事將株連, 有五六儒生, 自卞曹庭, 故發文而斥之.)”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하동(河東) 역옥(逆獄)은 말할 것도 없이, 앞선 글에서 살핀 문양해의 「정감록」 역모 사건을 가리킨다. 문양해 등이 하동을 거점으로 거사를 준비하고 있었기에 붙은 이름이다. 글은 문맥이 아주 묘하다. 하동 역옥과 추조 적발이 서로 이어졌다(相連)는 것은 두 사건이 잇달아 일어났다는 말이다. 역옥이 먼저였고, 추조 적발이 뒤미쳐 발생했다. 그런데 이 일로 잡혀 온 김씨 성을 가진 중인, 즉 김범우를 취조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혹 역모를 꾀한 「정감록」 세력과 연루되었을 수 있다는 의심이 제기되었던 듯하다. 이에 형조에서 이 부분을 집중해서 캐 들어가자, 5, 6명의 유생이 직접 형조의 마당까지 뛰어들어가 자신들이 역모와는 무관하고, 오로지 서학을 믿은 것이라고 자변(自卞), 즉 스스로를 변명하였다는 것이다.

「벽위편」의 추기(追記)에 따르면, 이들이 형조까지 쳐들어가서 스스로를 변명한 이유는 무엇보다 자신들의 명례방 집회가 자칫 문양해 역모 사건과 연루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차라리 천주교 신자임을 드러내어 정면돌파하는 것이 역모 사건과 자신들을 확실하게 분리하는 길이라고 여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항의에 참여한 5, 6인의 명단


형조 항의 방문에 앞장선 것은 권일신이었다. 권일신과 그의 아들 아들 권상문, 매부 이윤하, 이기양의 아들 이총억, 이기양의 외종 정섭 등 5인이었다. 「벽위편」에는 이름이 빠졌지만 이기양의 동생 이기성(李基誠)도 함께 참석했다. 이기성은 안정복의 아들 안경증(安景曾)의 사위였다. 이기성의 참여 사실은 「일성록(日省錄)」 순조 1년 9월 15일 기사에 실린 장령 정한(鄭澣)의 상소문 중에 “이기양의 온 가족이 서학에 미혹되어 빠진 것은, 그 아우가 을사년에 입정(立庭)한 일 같은 것이 모두 명백한 증거입니다(如李基讓之全家迷溺者, 其弟之乙巳立庭, 皆有明驗)”라 했고, 안정복의 친필 「순암일기(順菴日記)」 1785년 10월 10일 기사에서 이기양과의 대화를 적은 글 가운데 “불행히 권일신과 그대의 아들과 아우가 함께 추조에 들어갔는데, 그대의 아우는 내 손주 사위일세.(不幸省吾及君之子與弟, 同入于秋曹, 君弟吾孫壻也)”라고 한 대목으로도 확인된다. 이기성을 포함해야 6인이 된다. 「벽위편」에서 5인이라 하지 않고, 5, 6인이라 한 것은 이유가 있다. 애초에 그의 이름이 빠진 것은 연유를 알 수가 없다.

이만채 본 「벽위편」 「을사추조적발」조의 통문 바로 앞에는 강준흠(姜浚欽)이 쓴 글이 실려있고, 앞서 살핀 ‘분면청건’의 사연이 바로 이 글에 나온다. 글에는 또 이런 내용이 이어진다. 위 다섯 사람이 “곧장 형조의 마당으로 뛰어들어가 성상(聖像)을 돌려줄 것을 누누이 호소하며 청하였다. 형조판서가 심문하고서 그들이 아무개와 아무개임을 알고 크게 놀라 야단치고 타일러서 내보내고, 다만 장차 김범우만을 기소해서 형벌을 주고 유배시키려 했다.(直入曹庭, 請還聖像, 屢屢呼訴. 秋判審問, 其爲某某, 大驚責諭出送, 只將範禹, 草記刑配.)”

이들의 정면 돌파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형조판서 김화진은 심문 결과 큰일이기는 해도 이들이 역모 세력과는 무관함을 확인했다. 역모의 처결이 급박하게 돌아가던 상황에서 이 문제를 더 이상 확대하는 것은 오히려 역모 사건 종결에 걸림돌이 되리라는 판단이 섰다.

김화진이 이들을 석방하자, 이번에는 진사 이용서(李龍舒)와 정서 외 7명이 통문을 돌렸다. 다만 익명으로 통문을 낸 것을 보면, 이들 또한 살얼음판의 역옥 정국에 이 문제의 제기가 불러올 파장을 의식했음을 알 수 있다. 통문 끝에 함께 회람하고 동조한 사람의 명단이 있다. 강세정(姜世靖), 김원성(金源星), 이기경(李基慶, 1756~1819) 외 3명이다. 앞서 주어사 집회에 참석하고, 「감호창수첩」에 이름을 올렸던 권일신의 조카사위 김원성의 이름이 보이는 것은 특이하다.



달레의 「조선천주교회사」와 「사학징의」 속 사건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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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범우 토마스

달레는 「조선천주교회사」에서 이 대목을 어떻게 썼을까? 거듭 말하거니와 이 대목은 전적으로 다산의 「조선복음전래사」에 기초한 기술이다.

“김범우 토마스는 형조판서 앞에 불려가 배교를 재촉받았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힘을 얻어 끈기 있게 배교를 거부했다. 여러 가지 고문이 그에게 가해졌다. 그러나 그는 잠시도 굽히지 않았다. 권일신 하베리오는 이 소식을 듣고 충실한 동교인(同敎人)을 버려두는 것이 자기답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다른 여러 신자와 함께 판서 앞에 나아가 용감하게 외쳤다. ‘우리 모두가 김범우와 같은 종교를 신봉하니, 대감이 그에게 내리는 운명을 우리도 같이하겠습니다.’ 판서는 그렇게도 유력하고 유명한 인물들에게 손을 대는 것은 슬기롭지 못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그대로 돌려보냈으나, 그래도 김범우 토마스를 박해하는 것은 여전히 계속하였다. 그 내용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여러 가지 형벌을 가한 뒤에도 이 천주교인의 신앙과 끈기를 이겨낼 수 없었으므로, 그를 충청도 동쪽 끝에 있는 단양읍으로 귀양 보냈다.”

이 대목은 앞서의 통문과 겹쳐 읽어야 문맥이 소상해진다. 한편 「사학징의」 권 2의 끝에 「추관지(秋官志) 을사춘감결(乙巳春甘結)」이란 글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감결은 상급 관서에서 하급 관서로 내려보낸 문서를 말한다.

“을사년 봄, 본조(本曹)의 판서 김화진이 차대(次對)에 갔다가 관아로 와서, 중인 김범우가 서학을 높이 받든 일로 붙잡아 와 자세히 물었다. 김범우는 ‘서학에 좋은 점이 많이 있고 그릇된 점은 알지 못한다’고 하므로, 한 차례 엄한 형벌을 내렸다. 또 최인길(崔仁吉, 1765~1795)이 그 책을 함께 보았다면서 같이 벌받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 어리석음을 꾸짖어 매질을 하고, 김범우와 더불어 열흘간 같이 가뒀다. 그리고 다시는 믿지 말라는 뜻으로 타이르고 나서 최인길은 매질하여 풀어주고, 김범우는 유배를 보냈다. 이들이 간직했던 책자는 함께 형조의 마당에서 태워 버렸다.”

차대(次對)란 매달 여섯 차례 정기적으로 정부 당상과 대간(臺諫), 옥당(玉堂) 들이 입시하여 중요한 정무에 대해 임금과 논의하는 자리이다. 형조판서 김화진이 입궐해서 역옥 등의 현안 보고와 처리 방향에 대한 논의를 마치고 돌아와 바로 김범우를 취조했다. 이 말은 이때의 차대에서 명례방 집회 참석 남인들과 역옥의 연관 여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는 뜻이다. 심문에서 김범우는 서학이 좋은 점이 많은데 그것을 공부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대들었다.

이 와중에 예상치 못한 인물 최인길이 느닷없이 튀어나온다. 그가 권일신과 별도로 따로 형조를 찾아왔는지, 김범우와 함께 체포되어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를 벌주려면 나도 같은 책을 읽었으니 함께 벌을 주시오.” 김화진은 결국 열흘간 둘을 함께 가뒀다가, 최인길은 풀어주고 김범우를 충청도 단양으로 유배 보냈다. 압수 책자는 형조 마당에서 불태우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지어 버렸다.

최인길(마티아)은 「벽위편」의 을사추조적발 관련 기록에서는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는 10년 뒤인 1795년에 중국인 신부 주문모가 입국하자 계동에 있던 자기 집에 신부를 모셨다가, 진사 한영익의 밀고 때 윤유일, 지황 등과 함께 검거되어 10시간 만에 흔적도 없이 죽임을 당했던 인물이다. 이때 그는 스스로 주문모 신부 행세를 하면서 피신 시간을 벌어 줌으로써 신부의 극적인 탈출을 도왔다. 감결의 기록은 을사추조적발 당시 최인길 또한 명례방 집회에 참석했고, 권일신 등 6인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자, 그가 다시 나서서 자신도 함께 처벌해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른 사실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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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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