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숨은 이야기] 26. 양말론과 빈병론

Pilgrimage News 성지순례 뉴스
홈 > Knowledges > Pilgrimage News
Pilgrimage News

[교회사 숨은 이야기] 26. 양말론과 빈병론

관리자 0 885 0

“천주교는 아주 공평해서 아무 발에나 다 맞는 버선과 같다네”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26. 양말론과 빈병론

2020.11.15발행 [1588호]

3232235521_vpk7K19Z_dd22e10c75c34fe21a6f2d20fee774046a3e85e6.jpg
▲ 나열의 <서학>시. 나열의 문집인 「해양유고(海陽遺稿」(일본 동양문고 소장본) 권 1에 실려있다.



우리는 한 형제다

양반과 상놈의 구분이 없고 남녀를 차별하지 않는,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던 공동체에 대한 소문은 소곤소곤 금세 원근으로 퍼져 나갔다. 믿기만 하면 노비 문서도 불태운다더라, 가난한 이에게는 옷과 양식도 아낌없이 나눠준다더라고들 했다. 하나라도 더 못 가져 안달하던 사람들이, 제 것을 나눠주면서 행복하다 못해 아련한 표정까지 짓는 것이 좀체 이해되지 않았다. 그 못되고 심술궂던 시어머니가 어느 날 문득 며느리를 친딸 위하듯 하고, 술만 마시면 세간을 부수고 아내를 때리던 술꾼이 그날로 영판 딴사람이 되었다. 이웃들은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충청도 면천 사람 유군명 시메온은 양반 신분이었고, 효자로 이름난 사람이었다. 그는 양친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정성껏 제사를 모셨다. 59세 때 그는 덕산 황모실로 이사해 천주교에 입교했다. 이존창에게 세례를 받고는 다른 사람으로 거듭났다. 유군명은 노비를 모아 놓고 노비 문서를 불태웠다. 우리는 이제 천주 대전에 아무 차별 없는 한 형제라고 선언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재물을 흩어 가난하고 불행한 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이후 그는 속량 노비 출신의 이존창을 도와 천주교를 가르치고 포교하는 일에 오로지 헌신했다.

신유박해가 있던 1801년 5월에 체포된 그는 갖은 고문에도 다른 교우를 한 명도 고발하지 않고, 끝까지 배교도 하지 않았다. 먼 지방으로 귀양 가서도 흔들림 없이 신자의 본분을 지켰다. 다만 성경을 지녀가지 못한 것만 원통스레 여겼다. 그는 82세의 나이로 유배지에서 죽었다. 그가 보인 신앙의 모범이 그 지역 주민들까지 감화시켰다. 그는 그들의 찬양과 감탄을 받으며 꿇어앉아 기도를 드리던 모습으로 세상을 떴다. 달레의 「조선천주교회사」에 나온다.

「눌암기략」의 한 단락은 또 이렇다. “사학하는 무리의 법문(法門)은 재물을 함께 나누고 여색을 함께 하는 까닭에 과부와 홀아비 및 가난하여 스스로 먹고살 수 없는 자들이 모두 기꺼이 내달아 가곤 하였다. 비록 천한 종놈이라도 한번 그들의 무리에 들어가면 마치 형제처럼 보아 등급이 있는 줄을 몰랐으니, 이것이 그들이 어리석은 백성을 속여 미혹시키는 꾀였다.” 이 글은 삐딱한 시선으로 천주교를 바라본 언급이고, 내부자들에게 이같은 나눔의 공동체가 어떠한 기쁨과 일체감을 주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실제 지역 교회의 하부 조직에는 이존창 외에도 신분이 미천한 지도자들의 존재가 포착된다. 박종악의 「수기」에는 여사울의 천한 부류의 지도자로 최뚝쇠(崔斗古金)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그는 서학을 오래 익혀 교리에 깊이 통달한 사람이었다. 인근의 서학을 믿는 백성들이 대부분 그를 높여 존장(尊長), 즉 어르신으로 불렀다고 했다. 이들에게 신분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교리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더 중요했다.



이 버선을 신어보게!

1794년 주문모 신부가 조선에 밀입국했을 때, 당시 천주교 신자들의 소원은 오로지 신부를 직접 만나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부의 일거수일투족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져, 결코 아무나 만날 수가 없었다. 1839년에 순교한 신태보 바오로가 감옥에서 쓴 편지는 창립 초기 자료를 수집하던 샤스탕(Chastan) 신부의 명에 따라 작성한 글이었다.

신태보는 친척 이여진 요한과 함께 신부를 한 번이라도 만나보려는 소원을 이루려 애를 썼지만, 끝내 이루지 못했다. 140리 떨어진 서울까지 무려 18번이나 올라왔어도 소용이 없었다. 이를 딱하게 여긴 한 교우가 장에서 버선 한 켤레를 꺼내더니 신어보라고 했다. 어린아이의 발도 들어가지 않을 작은 버선이었다. “어른더러 어떻게 아이 버선을 신으라는 겐가?” “아무 말 말고 한번 신어나 보게.” 그러자 놀랍게도 그 작은 버선이 신태보의 발에 쏙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양말(洋襪), 즉 서양 버선을 처음 접한 조선 사람의 이야기다.

당황한 신태보에게 그 교우가 말했다. “천주교는 아주 공평한 것이라네. 어른도 아이도, 양반도 상놈도 없지. 부드럽고 탄력이 있어서 아무 발에나 다 맞는 이 버선과 같다네. 자네도 열심히 하기만 하면 신부를 만나볼 수 있을 걸세. 조금만 애를 쓰면 누구나 이 버선을 신을 수 있듯이 말이야.” 평면 재단이어서 버선본 없이는 발에 꼭 맞는 버선을 지을 수 없던 당시에, 양털로 만든 신축성 있는 서양 버선은 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문화 충격이었다. 신태보와 함께 갔던 이여진의 경우는 신부를 만나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서울로 이사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신부가 사형당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까지 단 한 번도 신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천주교인들의 이 같은 공동체는 외부자의 시선에서는 해괴한 변고에 지나지 않았다. 「눌암기략」의 다음 기술을 읽어 보자. “이른바 사학이란 학문은 그 주장이 불교의 남은 투식에서 나왔다. 또 경전의 말을 가지고 서로 꾸며서 이것으로 천하를 바꾸려 드니,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우리 유학이 어찌 일찍이 하늘을 공경하고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도 저들이 하늘을 섬긴다는 것은 도리어 상제를 빌려다가 속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들의 무리는 이것으로 복을 구하려다가 도리어 재앙을 부르고 말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저들이 높은 하늘을 큰 부모로 여기고, 다시 낳고 길러주신 은혜는 알지 못한 채, 벌거벗은 몸으로 한 방에서 섞여 지내며 남녀의 구별조차 없으니, 이는 거의 짐승만도 못한 것이다.”

유학의 입장에서 보면 남녀가 구분 없이 한 방에 앉아 요사스런 서양인의 형상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밤을 새우는 것은 변괴에 가까웠다. 박종악은 「수기」에서 “부자지간이라도 아들이 사학을 하는데 아비가 하지 않으면 아비를 아비로 여기지 않고 다른 무리라고 지목합니다. 아비가 비록 남에게 구타와 모욕을 당하더라도 가만히 보기만 하고 구하지 않습니다. 사학이 사람을 깊이 빠뜨리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라고 적기까지 했다. 관리들의 눈에 그들은 윤리를 무너뜨리는 멸륜패상(滅倫敗常)의 무리였을 뿐이었다.



부모가 빈 병인가?

나열(羅烈, 1731~1803)이 1790년에 지은 <서학(西學)>이란 장시가 있다. 그의 문집 「해양유고(海陽遺稿)」에 나온다. 시의 제목을 아예 서학으로 내건 시는 처음 본다. 그런 만큼 내용이 대단히 흥미롭다. 몇 단락만 간추려 읽어보자. “서학은 천주를 위주로 하여, 부모를 빈 병처럼 여기는구나. 자신을 병 속 물건처럼 보거니, 따른 뒤엔 병에 무슨 정이 있겠나.(西學主天帝, 父母視空甁. 自同甁中物, 脫來甁何情.)” 부모는 병이고, 나는 그 병에 담겼던 술과 같다. 술을 잔에 따르고 나면 술이 병에 대해 무슨 애틋한 정이 있겠는가? 이것이 이른바 ‘빈병론’이다. 천주교를 부모와 자식 간의 인륜을 끊는 패륜 집단으로 내몰고, 남녀의 분별을 허무는 난륜(亂倫)의 무리라고 비난하는 것은 당시 박해자들이 입만 열면 하던 얘기였다. 시가 다시 이렇게 이어진다.

“학술이야 1천 가지 갈래 있어도, 살기를 좋아함은 한 가지라네. 어이해 목숨을 매개로 삼아, 베여 죽음 즐겨함에 이른단 말가. 줄줄이 감옥에 묶여 들어와, 매질 채질 온갖 형벌 두루 받누나. 처음 한 말 바꾸려 들지 않고는, 그저 빨리 죽기만을 원한다 하네. 묻노라 죽는 것 왜 소원하나? 혼백이 천당에 오른다 하네. 천당은 화려하고 깨끗도 하여, 그 즐거움 몹시도 대단하다고.(學術雖千, 好生則同貫. 云何媒性命, 至乃樂斬斷. 累累繫刑獄, 榜備楚毒. 不肯易初辭, 但願速就戮. 借問戮何願, 魂魄升天堂. 天堂麗且淨, 其樂孔揚揚.)” 박해의 현장에서 지켜본 천주교 신자들의 태도를 묘사한 대목이다. 잔혹한 형벌에도 그들은 배교하지 않고, 그저 ‘예수 마리아’를 외치며 속히 죽여달라고만 했다. 어서 빨리 천당에 올라가 그 끝없는 즐거움을 누리겠다는 소망이었다. 나열의 이 시는 진산사건 이전에 지은 것이어서, 그가 직접 목격한 현장이 어디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시 이어지는 한 대목이다. “상제가 어이 중치 않으랴마는, 베푸는 바 멀고도 가까움 있네. 가장 먼저 부모 배반 가르치는 건, 천주의 교리에도 어긋난다네. 차례 건너 아첨하여 섬기는 것은, 밝은 신(神)도 틀림없이 옳다 않으리. 오늘날 베어져 죽임당하니, 죄 얻음이 진실로 그럴 수밖에. 스스로 그 구함을 얻는다면서, 슬픔 감춰 하늘을 속이는구나.(上帝豈不重, 所施有遠近. 首敎畔其親, 已非帝所訓. 越序而諂事, 明神必不. 見今受誅鋤, 獲戾固其然. 自言得其求, 匿哀誣上玄.)”

그들은 믿지 않으면 부모조차 원수로 여긴다. 부모를 저버리고 천주를 섬기겠다니, 이는 십계명에도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세상을 떠난 제 부모의 제사는 거부하면서, 노비 문서를 불태우며 만유 위에 모든 이가 평등하다 외친다. 인륜을 저버린 채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한가? 남녀의 분별을 잃고 한 방에 떼로 모여 앉아 밤을 새우니, 이런 꼴을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러니 베어 죽임을 당해 마땅하다고 했다. 당시 서학에 대한 평균적 시선이 이러했다.


3232235521_5yWislLO_2eb70adc49229c16f44a7d3a9bdc7c0f0e151b04.jpg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0 Comments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61 · 끝) 페르난도 보테로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향해서’

댓글 0 | 조회 829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61 · 끝)페르난도보테로의‘제2차바티칸공의회를향해서’20세기교회의변화·쇄신향해담대한발걸음내딛는요한23세-페르난도보테로,‘제2차바티칸공의회를향해서’(1… 더보기
Hot

인기 [세계]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60: 피에트로 카노니카의 베네딕토 15세 교종 기념비

댓글 0 | 조회 800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60)피에트로카노니카의‘베네딕토15세교종기념비’국경 · 민족초월해인류애선물한베네딕토15세교종-피에트로카노니카,‘베네딕토15세교종기념비’(1928년),성…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59) 프리드리히 스팀멜의 ‘하느님의 교회를 인도하는 레오 13세’

댓글 0 | 조회 880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59)프리드리히스팀멜의‘하느님의교회를인도하는레오13세’‘보편적인권’이라는새로운길로교회를이끌다-프리드리히스팀멜,‘하느님의교회를인도하는레오13세’(1903…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58) 루크 필즈의 ‘노숙자 임시 수용소 입소 허가를 기다리는 지원자들’

댓글 0 | 조회 783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 (58)루크필즈의‘노숙자임시수용소입소허가를기다리는지원자들’‘새로운사태’산업화의그늘,추위와굶주림에시달리는빈민들-루크필즈,‘노숙자임시수용소입소허가를기다리는…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57)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댓글 0 | 조회 1,046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57)밀레의‘이삭줍는여인들’목가적풍경이면에담겨진19세기농민들의팍팍한삶-밀레,‘이삭줍는여인들(LesGlaneuses)’,1857년,오르세미술관,프랑스파리…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56) 무명화가의 삽화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한 비오 9세 교황’

댓글 0 | 조회 836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56)무명화가의삽화‘제1차바티칸공의회를소집한비오9세교황’세속권력은잃고교황의영적권위를얻은공의회-칼벤징거저,「1873년비오9세교황에관해서」에나오는‘1869…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55) 프란체스코 하예즈의 ‘입맞춤’

댓글 0 | 조회 1,146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55)프란체스코하예즈의‘입맞춤’‘작별키스’에담긴숨은뜻은19세기이탈리아통일의지-프란체스코하예즈,‘키스’(1859년),브레라피나코테크소장,이탈리아밀라노.이…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54) 프란체스코 포데스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의 선포’

댓글 0 | 조회 904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54) 프란체스코포데스티의‘복되신동정마리아의원죄없으신잉태교의선포’비오9세교황‘원죄없이잉태되신성모교리’반포하다-프란체스코포데스티,‘복되신동정마리아의원죄없…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53) 필립 자크 반 브리의 ‘로마 공회장을 방문하는 그레고리오 16세’

댓글 0 | 조회 839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53) 필립자크반브리의‘로마공회장을방문하는그레고리오16세’로마황제개선문아래극빈촌을찾은교황-필립자크반브리,‘로마공회장을방문하는그레고리오16세’(1832년…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52)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

댓글 0 | 조회 910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52) 자크루이다비드의‘나폴레옹의대관식’대관식에서직접왕관을쓰는나폴레옹,교황은허수아비일뿐-자크루이다비드,‘나폴레옹의대관식’(1805~1807년),프랑스루…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51) 조셉 셀레스틴 프랑수아의 ‘1801년의 종교협약 비유’

댓글 0 | 조회 734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51)조셉셀레스틴프랑수아의‘1801년의종교협약비유’프랑스혁명정부의기세에밀려불리한조약을맺는교황청-조셉셀레스틴프랑수아,‘1801년의종교협약비유(Allego…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50) 펠리체 자니의 ‘연맹 축제를 위해 성 베드로 광장에 차려진 조국의 제단’

댓글 0 | 조회 762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50)펠리체자니의‘연맹축제를위해성베드로광장에차려진조국의제단’로마까지삼켜버린프랑스혁명의불길-펠리체자니,‘연맹축제를위해성베드로광장에차려진조국의제단’,179…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9) 자크 루이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댓글 0 | 조회 881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장면](49)자크루이다비드의‘호라티우스형제의맹세’프랑스혁명의폭풍전야에그린로마영웅사,신고전주의를열다-자크루이다비드,‘호라티우스형제의맹세’(1784년),유화,루브르…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8) 자코모 조볼리의 ‘성 빈센트 드 폴의 설교’

댓글 0 | 조회 938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48)자코모조볼리의‘성빈센트드폴의설교’사랑의혁명가,소외된이들에게십자가의빛을비추다-자코모조볼리,‘성빈센트드폴의설교’(1737),룬가라의코르시니궁(Pala…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7) 바치챠의 ‘예수 이름의 승리’

댓글 0 | 조회 876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47)바치챠의‘예수이름의승리’예수님이비추는찬란한황금빛이모두에게-바치챠,‘예수이름의승리’(1685년),예수성당내중앙본당천장,이탈리아로마.트렌토공의회는여러… 더보기
Category
글이 없습니다.
State
  • 현재 접속자 87 명
  • 오늘 방문자 1,302 명
  • 어제 방문자 1,673 명
  • 최대 방문자 5,379 명
  • 전체 방문자 1,669,646 명
  • 전체 게시물 1,336 개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