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숨은 이야기] 39. 내겐 천국이 두 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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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숨은 이야기] 39. 내겐 천국이 두 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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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한 백정을 점잖게 대해 주니 내게는 천국이 두 개 있습니다”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39. 내겐 천국이 두 개입니다

2021.02.21발행 [16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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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된 황일광 시몬은 포도청과 형조에서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굳건히 신앙을 지켰다. 그는 모진 형벌에 다리 하나가 완전히 으스러져 들것에 실려 형장인 고향 홍주로 압송되면서도 명랑한 성격을 잃지 않았다. 그림=탁희성 화백



내포의 천민 출신 지도자들

초기 교회의 양상에서 지역별로 성격 차이가 발견되는 것은 흥미롭다. 여주나 양근, 충주 및 청주 교회는 양반 계층이 전면에 섰고, 충청도 내포 일대만은 유난히 신분 낮은 일반 백성과 노비 계층이 신자의 주축을 이루었다.

내포 지역의 지도자는 이존창이었다. 「송담유록」에 따르면 그는 홍낙민 집안의 속량 노비의 아들이었다. 같은 책에서 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존창이 상민이었기 때문에 비록 무식하고 어리석은 백성에게 가르침을 행하였지만, 충청도의 사족(士族) 중에는 한 사람도 물든 자가 없었다는 점이다(所幸者, 存昌以常漢之故, 雖行敎於無識愚氓, 而湖中士族, 無一人浸染者矣)”라고 적고 있을 정도다. 내포 지역 교회의 특성은 상한(常漢), 즉 상놈들이라 불리는 신분 낮은 계층을 중심으로 신도층이 형성되었다는 데 있었다.

1791년 진산 사건 이후 박종악이 충청도 관찰사로 내려와 내포 지역 교회에 대한 검거가 본격화되었을 때, 붙잡혀 간 이존창은 자신의 제자 10인의 이름을 댔다. 천안의 최두고금(崔斗古金), 한봉이(韓奉伊), 최완복(崔完卜), 이개봉(李介奉), 황유복(黃有卜), 김명복(金明卜), 유복철(柳卜哲), 이복돌(李卜乭), 이치한(李就汗), 예산(禮山) 김삼득(金三得) 등이었다. 대부분 상한(常漢)으로, 이름으로 보아 노비 출신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리더인 이존창이 배교를 다짐하며 타이르자, 그를 따라 대부분 다짐장을 쓰고 풀려났다.

이들 중 존장(尊長)으로 불리며 가장 존경을 받던 이는 최두고금이었다. 박종악은 「수기」에서 그에 대해 이렇게 썼다. “천안 호동의 사학하는 무식한 부류 중에서는 최두고금이 가장 오래 익히고 깊이 통달한 자입니다. 그래서 근처의 어리석은 백성 중 사학을 하는 자들이 대부분 두고금을 추존하여 존장이라고 합니다. 이자는 비록 이미 다짐을 받고 놓아 주었지만, 따로 징벌하여 혼낸 뒤라야 어리석은 백성들이 더욱 두려워 그만두게 될 것입니다.”

천안 호동, 즉 여사울의 천주교 신자 중 최두고금은 지도자급 인물이었다. 이존창이 내포 지역 전체를 관할하는 지도자였다면, 그는 여사울 지역 교회의 실질적인 리더였다.



최두고금(崔斗古金)과 최구두쇠(崔去斗金)

그런데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사학징의」 기록 속에 최두고금과 이름이 비슷한 최거두금(崔去斗金)란 인물이 다시 나온다. 거두금(去斗金)은 ‘구두쇠’의 한자 표기다. 실제로 그는 최구두쇠로 불렸을 것이다. 현재 「수기」 번역본은 최두고금을 ‘최뚝쇠’로 읽었는데, 두고(斗古)는 ‘뚝’으로 읽을 수 없다. 뚝은 뚝섬(纛島)의 표기에서 보듯, ‘뚝(纛)’이란 글자가 따로 있다. 「수기」의 최두고금은 최고두금(崔古斗金)의 오기일 것이다. 두고(斗古)의 두 글자 순서를 바꾸면 고두금(古斗金) 즉 ‘고두쇠’로, 역시 ‘구두쇠’로 읽힌다.

1791년 박종악의 「수기」에 이존창의 제자로 나온 ‘최두고금’과, 1801년 「사학징의」에 보이는 최구두쇠는 동일 인물이다. 충청감영에서 1801년 3월 29일 자로 의금부로 보낸 공문 내용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최천명(崔千明)의 아비 최구두쇠(崔去斗金)는 이존창과 이웃에 있으면서, 오래 사학에 물들었다. 지금은 비록 하지 않는다 하면서도 삿되게 묵주를 숨겨두고 있었다. 이미 체포된 막내아들 최억명(崔億明)도 일찍이 이존창을 따라 금산(錦山)으로 들어갔는데, 지금 또한 달아나서 있는 곳을 알지 못한다. 그 부자(父子)의 자취는 실로 의심할만한 것이 많다.”

최구두쇠는 1791년 배교를 다짐하고 풀려났지만, 배교는 커녕 그의 두 아들 최천명과 최억명까지 이존창의 심복으로 열심히 활동하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 모두 검거되었다. 이때 최구두쇠의 집에서 묵주가 나왔고, 최천명은 안성교(安聖敎)와의 관련으로 서울까지 압송되어 취조를 받았다. 막내 최억명은 이존창을 수행하여 금산까지 갔다가 달아나 숨은 상태였다.

최구두쇠는 여사울 교회의 실질적인 지도자였고, 두 아들 최천명과 최억명도 이존창을 곁에서 보좌하며 직분에 충실했던 인물들이다. 아들 최천명이 「사학징의」에 남긴 공초에는 이존창은 한마을에 살았지만 상종도 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는 살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이들 부자는 다행히 뚜렷한 행적이 없고, 증거물과 증인이 나오지 않아 당장 죽음에 이르지는 않았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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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자 황일광 시몬


두 개의 천국을 가진 황일광 시몬

황일광(黃日光, 1757~1802) 시몬은 홍주(洪州) 사람으로 최하층민인 백정 출신이었다. 달레는 어린 시절과 젊은 날 그가 “모든 사람의 멸시와 쓰레기 같은 취급을 받아가며 지냈다”고 썼다. 이하 그의 생애는 달레의 「조선천주교회사」와 「사학징의」의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그는 42세 나던 1798년 홍산(鴻山)으로 이존창을 찾아가 그 집에 부쳐 살며 천주교를 배워 열심한 신자가 되었다. 이후 그는 고향을 떠나 아우인 황차돌(黃次乭)과 함께 멀리 경상도 땅으로 옮겨가 살았다. 경상도 어디인지, 그곳에 왜 갔는지에 대한 설명은 남아있지 않다. 더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라고만 했다. 뭔가 맡겨진 역할이 있었을 것이다. 그가 간 곳의 교우들은 천한 백정 출신의 형제를 편견 없는 애덕으로 감싸주었다. 천주교를 받아들인 이후 황일광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손가락질당하고 멸시받던 삶, 쓰레기 취급의 응어리가 눈 녹듯 사라졌다. 가슴 깊은 곳에서 기쁨이 샘물처럼 차올랐다.

그는 편견을 거두고 자신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나눠주는 신앙 공동체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게는 천국이 두 개 있습니다. 저같이 천한 백정을 이처럼 점잖게 대해 주시니, 이 세상의 삶이 제게는 천국이요, 죽은 뒤에 가게 될 하늘나라가 또 하나의 천국입니다.” 하루하루가 벅찬 기쁨의 날들이었다.

1800년 2월, 황일광과 황차돌 형제는 광주 분원(分院) 정약종(丁若鍾, 1760~1801)의 행랑채로 이사했다. 형제는 그 튼튼한 몸과 티 없는 신앙의 모범으로 이존창의 명에 따라 각 지역 교회를 오가며 모종의 역할을 맡았던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충청도 홍주 출신으로 경상도에 머물던 그들이, 당시 명도회 회장으로 천주교의 지도자였던 광주 정약종 집의 문간방으로 찾아들어 갈 이유가 없다. 그의 활동 범위는 가히 전국구였다. 그는 이곳에서 정약종과 서울 및 지방 교회를 연결하는 심부름꾼의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다. 황일광의 열심은 언제나 주변 모든 이들의 탄복을 부를 정도였다.



어찌 배반하리이까?

1800년 10월에 정약종은 상경해서 청석동에 살던 궁녀 문영인(文榮仁)의 집으로 이사했다. 정조 임금의 국상 중이어서 이 기간 중 일체의 검거 활동이 멈춘 까닭에 잠깐의 진공 상태가 있었다. 10월을 보통 소춘(小春)이라 하는데, 가을의 한복판에서 한동안 봄날 같은 날씨가 이어지는 시기가 들어 있어서이다. 앞서 「벽위편」에서 아녀자들이 겁도 없이 밤중에 쏟아져 나와 길거리를 다녔다던 그 시기이다. 곧 다가올 매서운 추위의 전조 격으로, 일종의 인디언 섬머 같은 기간이었다.

명도회 회장 정약종의 상경은 아마도 주문모 신부의 요청에 따른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는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뒤 궁을 나와 살고 있던 궁녀 문영인의 집에 세를 얻어 서울에 근거지를 확보했다. 이때도 황일광 형제가 이삿짐을 날랐다. 이 집에서 황일광은 마침내 주문모 신부를 만나 세례를 받고 시몬(深淵)이란 세례명을 받았다. 함께 미사를 올리는 벅찬 기쁨도 맛보았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문영인의 집이 좁아 함께 거처할 수 없자, 형제는 정동(貞洞)의 골목집 사랑채에 들어 땔감을 팔며 생활했다. 서울 생활은 땔감 없이는 밥도 못 짓고 겨울철 난방도 할 수가 없었다. 땔감 배달은 신자들을 방문하여 소식을 전하면서도 남의 의심을 사지 않을 일거리였다.

이들 형제는 1801년 2월, 정약종이 체포되기 며칠 전에 붙잡혔다. 끌려갈 때도 끌려가서도 그는 내내 명랑했다. 관리의 날카로운 추궁과 고문에도 조금의 흔들림이 없었다. 천한 백정이 신앙을 절대로 배신하지 않겠다며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할 때는 거룩한 아우라가 넘쳤다. 대가는 잔혹한 고문이었다. 다리 하나가 완전히 으스러졌다.

11월 12일에 포도청은 형제를 형조로 넘겼다. 그는 정약종, 이존창, 황사영 등 사학 3적(賊)의 심복으로 지목되었고, 혈안이 되어 찾고 있던 황사영의 소재를 대라며 집중 추궁을 받았다. 그의 대답은 구차하지 않았다. “저는 여러 해 동안 사학에 빠져서 이를 바른 도리로 알았습니다. 비록 죽는 지경에 이른다 해도 어찌 배반하여 버릴 마음이 있으리이까? 속히 죽임을 당하는 것이 지극한 소원이올시다.” 첫 번째 천국에서의 삶이 이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조정은 그를 고향인 홍주로 보내 그곳에서 목을 베라고 했다. 그곳 천주교 신자들에게 두려움을 갖게 하려는 뜻이었다. 그 먼 길을 그는 들것에 실려 갔다. 들것 위에 그를 얹고 서울에서 홍주까지 옮겨야 했던 포졸들은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그는 홍주에 도착한 당일 45세의 나이로 목이 잘렸다. 그는 그날 두 번째 천국에 올라 천주의 품에 안겼다.

황일광 시몬의 빛나는 덕행은 그곳 신자들에게 두려움을 주는 대신 무한한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천한 백정인 그도 천주의 영광을 위해 저토록 거룩하게 죽었다. 우리도 따라가자. 우리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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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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