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숨은 이야기] 43. 홍교만·홍인 부자와 포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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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숨은 이야기] 43. 홍교만·홍인 부자와 포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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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의 사도 홍교만, “예수의 학문이 정학이다” 당당하게 선언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43. 홍교만·홍인 부자와 포천 교회

2021.03.21발행 [16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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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교구가 2014년 순교 성지로 선포한 포천 홍인 레오의 순교터에 세운 현양비.(김승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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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774년 통문. 홍교만의 이름이 서명자의 첫머리에 나온다.(김승한 제공)



홍교만 집안의 신앙

홍교만(洪敎萬, 1738~1801)은 1801년 2월 26일, 정약종, 최창현, 최필공, 홍낙민, 이승훈과 한 날 목이 잘려 순교했다. 정약용은 「추안급국안」에 실린 1801년 2월 13일 자 의금부 공초에서 “포천의 홍교만 또한 유명하고, 제 형과는 친사돈 간이며, 홍주만의 아우입니다”라고 진술했다. 함께 형이 집행된 인물들의 면면과 정약용의 진술로 당시 홍교만의 교계 내 위상이 드러난다. 아들 홍인(洪, 1758~1801)과 서종제(庶從弟) 홍익만(洪翼萬, ?~1801)도 신유박해 때 순교의 길을 따랐다.

홍교만의 큰 형 홍주만(洪周萬, 1718~1799)은 집의를 거쳐 오늘날 서울시장에 해당하는 정2품 한성 판윤(判尹)을 지낸 명망 있는 인물이었다. 부친 홍회(洪晦, 1694~1763)의 기일에 홍교만이 제사에 참석하지 않으려고 포천으로 떠나자, 홍주만이 대성통곡했다는 이야기가 「송담유록」에 나온다.

「송담유록」에는 1785년 을사추조 적발 이후 지역 교회의 활성화를 말하면서 이렇게 적고 있다. “권일신은 한강 상류에서 가르침을 행하였다. 남필용(南必容, ?~1802), 이기연(李箕延, 1737~1801), 이최연(李最延), 홍교만, 홍익만 등이 마음을 기울여 본받아 배우며 남몰래 서로에게 전수하였다. 양근(楊根)과 여주(驪州), 이천(利川)의 몇 고을 사이에 무지한 어리석은 백성들이 휩쓸리듯 이를 따르니, 마치 소리의 기운이 멀리서 서로 호응하는 듯하였다.”

양근의 권일신을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듯 충주의 남필용과 이기연 형제, 그리고 포천의 홍교만 등이 지역 교회의 간판 역할을 하면서 교세를 확장해가는 과정을 설명했다. 이들은 모두 권철신 집안과는 친인척 간이었다. 남필용은 권철신의 처남으로 충주에 살다가 1791년에 양근에서 사학을 배웠다. 1791년에 충주 관아에 끌려갔다가 석방된 뒤 1792년에 서울 소공동으로 이사했다. 상경 이유는 마음껏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였다. 충주의 사도 이기연은 권철신의 동생 권숙신의 아들 권상익(權相益)에게 딸을 시집보내, 사돈을 맺었다.

홍교만은 그 명망과 비중에 비해 알려진 사실이 많지 않다. 「사마방목(司馬榜目)」에 따르면 1738년생인 그는 40세 때인 1777년 식년시에 진사로 급제했고, 자가 도경(道卿)이다. 부친 홍회는 초배 풍천(豊川) 임씨(任氏, 1695~1723)와의 사이에서 맏아들 홍주만, 둘째 아들 홍소만(洪召萬, 1720~1788)을 두었다. 이후 18년의 터울을 두고 계배(繼配) 한양 조씨(趙氏, 1706~1781)에게서 막내 홍교만을 얻었다. 남양홍씨 예사공파 족보에는 홍교만과 그의 아들 홍인의 이름은 파버리고 없다. 그의 계보는 「남보(南譜)」와 「만가보(萬家譜)」에 겨우 남았다.

권철신의 부친 권암(權巖, 1716~1780)에게 시집간 홍상빈(洪尙賓, 1672~1740)의 딸 홍씨는 홍교만의 고모였다. 따라서 권철신은 홍교만과 고종사촌 간이다. 그런데 「만가보」에서 홍회의 여동생 홍씨를 홍교만의 누이로 잘못 적고, 또 황사영이 「백서」에서 홍교만을 권철신의 외숙이라고 착각하는 바람에, 홍교만과 권철신의 계보 이해에 얼마간 혼선이 빚어졌다. 1794년에 간행된 안동 권씨 족보에 권암의 배(配)가 남양 홍씨 참판 상빈의 딸이라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어, 움직일 수 없다. 홍교만의 부인은 「남보(南譜)」에 유주갑(柳周甲)의 딸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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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자 홍교만 F. 하비에르


홍교만의 입교 시점

홍교만의 입교 시점은 찬찬히 따져 볼 부분이 있다. 교회사에서는 1791년에 아들 홍인이 입교하고, 그 이후 아들의 설득에 의해 1795년에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것으로 정리된다. 달레의 「조선천주교회사」의 기록에 바탕을 둔 설명이다. 홍교만은 1777년 늦깎이 진사가 된 얼마 뒤 포천으로 이주했고, 고종 간인 인근의 권철신 집안을 통해서 천주교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썼다.

우선, 홍교만이 권철신, 권일신을 통해 1차로 천주교에 접촉한 것은 1785년 전후 교회 출범 당시일 듯하다. 강세정(姜世靖, 1743~1818)은 「송담유록」에서 “홍교만은 판윤 홍주만의 아우로, 나와는 함께 공부했다. 문사(文詞)가 풍부하여 사람들이 알찬 인재라고 일컬었다. 전에 나와 함께 있을 때, 말이 사학의 주장에 미치면 팔뚝을 걷고 큰 소리로 극구 엄격하게 배격하였다. 나중에 정약종과 혼인을 맺었고, 또 권철신의 형제와는 내외종 간이었다. 그의 서종제(庶從弟)인 홍익만도 서학에 깊이 들어갔기 때문에 뒤늦게 그 술법을 배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 집안이 빠져들었다. 성품이 몹시 편협한지라 미혹됨이 더욱 심하였다”고 적었다.

강세정은 젊은 시절 홍교만과 함께 수학했다. 강세정은 이때만 해도 홍교만은 천주교에 대해 엄격히 배격하는 태도를 지녔다고 증언했다. 이후 권철신과 고종사촌 간인 데다 정약종과 사돈을 맺으면서 서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외골수의 성격 탓에 한번 배워 익힌 뒤에는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다고 적었다.

또 강세정은 「송담유고」에 실린, 척사파였던 아들 강준흠(姜浚欽, 1768~1933)을 변호하기 위해 쓴 「가아준흠변방록(家兒浚欽卞謗錄)」에서 “사학에 빠진 자는 숫자가 많으니, 이가환과 이기양, 이기성, 이총억, 그리고 정약종, 정약전, 정약용, 정철상, 그리고 권철신의 온 집안 형제와 숙질, 이벽과 홍교만 부자, 이학규와 황사영, 유항검 형제, 이윤하 부자 등 5, 60명을 밑돌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여기에 언급된 이름들은 모두 교회 창립 초기의 핵심 구성원들이다. 특별히 홍교만 부자의 이름은 이벽과 나란히 호명되고 있다. 누구보다 홍교만을 잘 알았던 강세정의 일관된 진술은 홍교만의 입교가 1785년 전후 교회 창립 당시로 소급되어야 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더욱이 홍교만은 1801년 2월 20일 의금부의 공초에서 예수의 학문이 정학이며, 사학일 수 없다고 당당하게 선언했고, 존경하고 찬송한다는 말까지 붙여 심문관의 매서운 추궁을 받았다. 예수 강생설을 확신하여, 「시경」 「서경」 「역경」에 비춰봐도 내용이 합치한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심문관이 이쪽과 저쪽 중 하나만 가리키라고 하자, 그의 대답이 이랬다. “제가 이 학문에 대해서는 수십 년 동안 공부를 쌓아서 비로소 얻은 것이니, 이제 어찌 한마디 말로 억지로 뉘우쳐 깨달았노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이미 강생한 예수를 아는지라, 이제 갑작스레 뉘우쳐서 예수를 삿되다 하기 어렵습니다.” 말이 당당하고 단단했다. 추국장의 사학죄인의 진술 중 가장 힘 있는 대답이었다. 이 말을 한 엿새 뒤인 2월 26일에 그는 사형에 처해졌다. “홍교만은 죽을 때까지 후회하지 않고 기꺼운 마음으로 사형을 받았습니다”라는 국청의 계사(啓辭)가 남아있다.

홍교만이 1791년 이후,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1795년 언저리에 입교했다면 불과 6년 뒤의 일이라 위 진술 중 수십 년이란 언급은 가당치 않다. 이를 자신이 수십 년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십수 년 이상 공부했다고 말한 것으로 본다면, 또한 1780년대 중반 입교설에 힘이 더 실릴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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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자 홍인 레오


사위 정철상과 아들 홍인

홍교만은 정약종과 사돈을 맺어 그의 막내딸이 정약종의 맏아들 정철상과 혼인을 맺었다. 다블뤼 주교는 「조선 주요 순교자 약전」에서 1801년 3월에 참수될 당시 정철상의 나이가 20여 세였다고 했고, 「조선순교자비망기」에서는 약 20세였다고 썼다. 정철상은 죽을 때 젊은 미망인과 아들 하나를 남겨두었다.

정철상이 홍교만의 딸과 혼인한 것은 정황상 1797년을 전후한 시점이었을 것이다. 부인 홍씨와 어린 아들은 마재에서 요절했다. 1801년에 사형당한 정철상은 죽을 당시 20세 남짓이었다. 그는 1780년을 전후해서 태어났다. 정철상과 결혼한 홍교만의 딸이 통상 두 살쯤 위인 1778년이거나 그 비슷한 언저리에 태어났다고 볼 때, 그녀와 오빠 홍인과의 나이 차이가 20세가량 난다.

다블뤼 주교는 「조선 주요 순교자 약전」의 홍인 조에서, 홍인이 포천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유년기를 보냈다고 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1774년에 작성된 포천 유림의 통문이 남아있다. 포천 용연서원(龍淵書院)의 건물이 낡아 새로 짓기 위해 각계의 지원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연명(聯名)한 명단 첫머리에 홍교만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는 진사시에 급제하기 3년 전인 1774년에 이미 홍교만이 포천지역 유림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었다는 의미이니, 그의 포천 이주를 1777년 이후로 본 달레의 언급과 달리 홍교만의 포천 입주는 이보다 훨씬 앞선 시점이었다. 다만 1758년생인 홍인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이곳에 정착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한편 「사학징의」의 공초에서 홍인은 “저는 홍교만(洪敎萬)의 아들로, 신해년(1791)에 아비의 가르침을 곁에서 듣다가 따라 배워 깊이 미혹되었습니다”라고 하여, 자신이 아버지 홍교만을 신앙으로 이끈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통해 신앙을 갖게 되었음을 밝혔다.

포천의 사도 홍교만의 행적은 이렇듯 풀어야 할 고리가 많다. 신앙의 출발점이 1785년 직후인지 아닌지, 포천으로의 이주 시기는 언제인지를 살펴야 하고, 홍교만과 홍인의 신앙의 선후 관계도 짚어봐야 한다. 「사학징의」에 포천 지역 검거 교인 명단이 따로 나오지 않는 것은 의외다. 1795년 이후 홍교만이 서울 지역으로 활동 공간을 옮겼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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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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