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신간] 조선 지식인 사랑 한몸에 받은 「칠극」,현대인에게도 깊은 울림 전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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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신간] 조선 지식인 사랑 한몸에 받은 「칠극」,현대인에게도 깊은 울림 전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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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 사랑 한몸에 받은 「칠극」,현대인에게도 깊은 울림 전하길

칠극 / 정민 옮김 / 김영사

2021.05.30발행 [16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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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선교사 판토하 신부가 저술한 「칠극」을 번역한 고전학자 정민 교수.



18세기 후반, 조선에 천주학이 들어오기까지 꾸준히 읽히며 당대 지식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책이 있다. 예수회 소속의 스페인 선교사 판토하(1571∼1618, 중국명 방적아) 신부가 쓴 「칠극」이다. 1614년 첫 출간 후 350년 후 마지막 판본이 나오기까지 꾸준한 독자층을 보유한 책으로 인간을 둘러싼 7가지 병든 마음과 이를 치유하는 7가지 처방이 담겼다. 판토하 신부가 중국에 체류한 기간은 19년이었지만 중국어 구사력이 탁월했다. 그는 「칠극」을 저술하고 중국 사대부들의 극찬을 받으며 한학가 반열에 오른다.


서양의 천주교와 동양의 유학이 만나 탄생한 ‘인생 수양서’로 꼽히는 「칠극(七克)」(김영사)을 우리 시대 대표 고전학자 정민(베르나르도,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번역, 우리말로 출간했다. 「논어」의 7배로 한자로는 총 8만 2590자의 방대한 대작이다. 우리말 번역서는 700쪽 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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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극」이 조선 후기 지식인들에게 준 영향과 파급력은 상당했습니다. 「칠극」은 사실 「천주실의」보다 천주교 사상을 전달하는 데 더 결정적인 텍스트였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한양대 연구실에서 만난 정민 교수는 “코로나가 강타한 동안 외부와 접촉을 끊고 책을 번역하며 정서적 위안을 얻었다”면서 “칠극은 일반적인 수양서, 교양서로도 훌륭하지만 신앙 서적으로도 훌륭한 책”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지난해 5월부터 본지에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를 연재하며 다산 정약용의 천주교 관련 문헌을 들여다보게 됐고, 칠극의 원문에 담긴 잠언풍 가르침에 매료되면서 번역하게 됐다. 다산에게도 「칠극」은 생애 전반을 함께한 책이었고, 천주교와 무관한 연암 박지원 등 조선 후기 문장가들의 글에서 「칠극」의 비유와 표현이 속속 등장한 것도 정 교수의 흥미를 끌었다.

그러나 기존에 나온 「칠극」의 번역서들도 있지만 원문과 멀어진 오역은 아쉬웠다. 이 책이 원문과 대역한 최초의 번역서는 아니지만 고전학자의 번역서인 만큼 그 학술 가치로는 첫 자리에 놓을 만한 결과물이다. 정 교수는 1년 동안 칠극의 각종 판본을 찾고, 기존에 나온 2종 번역을 참고하며, 잘못되거나 찾지 못한 것을 바로잡았다.

“중국에도 칠극의 번역본은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원문만 나와 있죠. 판토하 신부가 한문으로 쓴 책이기 때문에 라틴어 원전도 없어요. 제 번역을 영어로 번역하면 서양어권에 최초의 칠극이 전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칠극」은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이 천주학과 접속한 유력한 통로였다. 판토하 신부는 인간이 저지르기 쉬운 7가지 마음의 병과 이에 따른 7가지 해법을 제시한다. ‘교만에 맞서는 겸손’, ‘질투를 이기는 사랑’, ‘탐욕을 없애는 관용’, ‘분노를 가라앉히는 인내’, ‘식탐을 누르는 절제’, ‘음란의 불길을 식히는 정결’, ‘나태를 깨우는 근면’이 각 증세에 따른 처방이다.

“성호 이익이 칠극을 읽고 ‘유가의 극기복례와 다를 바 없다’고 했습니다. 유교의 기본 윤리는 ‘극기복례(克己復禮)’이지요. 극기라는 것은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 세계를 극복해 복례, 즉 ‘예’인 상태로 회복하는 겁니다. 성호는 칠극을 ‘서양의 극기복례 버전’이라고 본 것입니다.”

칠극은 어록체 산문으로 구성돼 있다. 논어를 읽는 느낌이다. 동양 사회에 서학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던 비결이 이 서술 방식에 있다.

정 교수는 “기존의 「논어」와 「맹자」는 주제에 상관없이 공자와 제자가 주고받은 이야기를 순서 없이 적었지만, 칠극은 서양식의 연역적 사유로 일곱 가지 죄종을 극복하는 단계를 체계적으로 집중 배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판토하 신부는 아우구스티노, 그레고리오, 베르나르도 등 서양 중세 성인과 그리스 철학자들의 잠언과 일화, 이솝 우화와 중국 고전도 인용해 동양의 유교적 지식인들에게 친밀도를 높였다. 교리를 직접 전달하기 위한 교리서라기보다 서양인의 수양론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겉으로 종교적 색채는 드러나지 않지만 154회에 달하는 성경 구절 인용은 성경의 의미를 내재화하기에 충분하다.

정 교수는 “일반 독자들이 이전 번역을 통해서는 칠극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번역도 그 시대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렸을 때에는 성가 ‘하느님의 어린양’을 ‘천주의 고양∼’ 이라고 불렀어요. 초등학생 때였는데 할머니에게 ‘고양이 뭐에요?’ 했더니 할머니도 모르니까 ‘천주께서 고양이를 좋아하신다’는 말씀이라고 했어요.(웃음) 천주의 고향의 오자라고 생각했죠. 고양은 ‘어린 양’을 뜻하는데 ‘염소 고’에 ‘양 양’ 자를 쓴 거예요. 중국 한자를 번역해서 쓴 거죠. 염소 고는 지금 쓰는 말이 아닙니다.”

「칠극」 서문에는 명나라 정치가, 문인, 학자들의 찬사로 가득하다. 학자 양정균은 “훌륭한 이치와 오묘한 뜻이 마음을 깨어나게 하고 눈을 열어준다”고 썼고, 문인 진량채는 “뼈를 찌르고 마음을 뚫는다”고 표현했다. 정 교수는 “바깥세상은 위험이 상존하고, 불안한 내면은 늘 요동친다”며 “바른 삶의 자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선물한다”고 서문에 썼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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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회 선교사 판토하 신부가 지은 「칠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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