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숨은 이야기] 72. 윤지헌 일가의 신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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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숨은 이야기] 72. 윤지헌 일가의 신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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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충·윤지헌 집안 거의 멸문… 숙부 윤징 정사박해 때 순교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72. 윤지헌 일가의 신앙생활

2021.10.24발행 [16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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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버드대학교 옌칭도서관 소장 「백가보(百家譜)」에 수록된 윤지충 일가 족보. 파란 색으로 표시된 세 사람의 이름 아래 모두 ‘사주(邪誅)’란 표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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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부 윤징(尹)도 정사박해 순교자

「남보(南譜)」는 당시 남인 유력 가문의 족보를 모은 책이다. 해남 윤씨 항목에서 윤지충의 이름을 찾으면 윤두서(尹斗緖)의 아홉 아들 중 다섯째 윤덕렬(尹德烈)의 손자로 나온다. 윤덕렬의 아들 윤경(尹憬)에게 다시 두 아들이 있다. 맏이가 윤지충이고, 둘째가 다섯 살 터울의 윤지헌이었다. 다산의 부친 정재원(丁載遠)에게 시집 온 아내 윤씨는 윤경의 여동생이자 윤징의 누나였다. 여러 종류의 「남보」에 윤지충과 윤지헌 두 사람의 이름 뒤에는 ‘사폐(邪斃)’ 또는 ‘사주(邪誅)’란 글자가 선명하다. 사학으로 인해 처형되었다는 뜻이다.

「해남윤씨대동보」에는 윤지헌이 부친 윤경의 아우 윤징(尹, 1730∼1797)에게 입계된 것으로 나온다. 「남보」에는 입계 사실이 적혀있지 않다. 대신 「남보」에는 윤징의 이름 밑에 역시 ‘사주(邪誅)’란 두 글자가 적혀 있다. 윤징 또한 천주교 신자로 처형되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천주교 관련해 어떤 문헌에서도 윤징이 천주교인이었고 순교했다는 이야기는 확인된 바 없다. 「해남윤씨대동보」에는 윤징의 자가 유평(儒平)이고, 정사년 즉 1797년에 세상을 떴다고만 했다. 그의 묘소는 진산군(珍山郡) 막현(莫顯)이란 곳에 있었다. 윤지충 형제가 나고 자란 곳이다. 현재는 금산군 진산면 막현리이다.

윤지충의 숙부 윤징이 천주교로 죽임을 당했고 사망한 해가 1797년이었으며, 묻힌 곳이 진산이었다면 이는 그가 정사박해 때 순교했다는 뜻이다. 정사박해는 1795년 주문모 실포 사건 이후 충청도 일원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천주교도 검거령으로 인해 일어난 교난이었다. 윤징 또한 정사박해 당시 서학에 연루되어 죽은 100여 명의 순교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듯하다. 그런데 어째서 윤징의 순교 사실을 언급한 기록이 전무한가? 「해남윤씨대동보」에도 그가 사학으로 처형되었다는 기록은 쏙 빠졌다. 여러 「남보」에만 이 사실이 ‘사주’란 두 글자로 또렷하게 남았다.

윤지충 형제는 숙부 윤징에 대한 정이 남달랐다. 1791년 진산 사건으로 윤지충에게 검거령이 떨어졌을 때, 그가 달아나 숨자, 군수는 숙부 윤징을 붙잡아다가 그를 겁박했다. 윤징이 자기 대신 잡혀갔다는 말을 들은 윤지충과 권상연은 바로 자진 출두했다.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에 나온다. 또 다블뤼의 「조선주요 순교자 약전」에서는 10월 28일에 윤징이 군수 앞에 끌려가서 “아무개가 그랬던 것처럼 이들을 막을 수 없었는가?” 하고 추궁하자, 윤징이 끝까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윤징 또한 이때 이미 신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윤지충이 처형된 뒤, 윤지헌의 고산행에 윤징은 합류하지 않고 진산에 그대로 머물렀던 듯하다. 이후 1797년에 그가 사학죄인으로 죽었을 때, 윤지헌은 진산으로 건너가 그의 장례를 주관했을 것이다. 그 외에는 직계 가족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숙부인가 양부인가?

윤징이란 이름은 「사학징의」에 딱 한 차례 등장한다. 전라감사 김달순이 1801년 3월 28일에 보낸 비밀 공문에서다. 윤지헌을 신문하면서 심문관이 물었다. “폐지했던 제사를 새롭게 진설하였다고는 해도, 네 숙부의 상에 또 신주를 세우지 않은 것은 그 범한 죄를 살피건대 도리어 네 형보다 지나침이 있다.” 윤지헌이 대답했다. “제 숙부 윤징(尹)이 자식 없이 죽어서, 장례의 처리와 상례와 제사는 예법대로 행하였지만, 사당을 주관할 사람이 이미 없고 보니 사판(祠版)을 모실 수가 없어서, 신주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족보로 보면 이미 입양되어 부자의 관계로 설명해야 마땅할 윤징을 윤지헌은 아버지라 하지 않고 숙부라고 했다. 자신이 엄연한 양자였음에도 그가 자식 없이 죽었다고 했다. 요령부득의 문맥이다. 혹 입계되었다가 윤지충이 후사 없이 죽자 큰집의 절손을 염려해 입양을 파양해 원위치시켰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이 경우 전라감사의 문초에서 맥락 설명 없이 그저 네 숙부라고 말할 수는 없다. 「추안급국안」 중 1801년 9월 11일의 결안에도 “네 뿌리는 아비는 윤경이고, 조부는 덕렬이며, 어미는 권조이(權召史)이고, 장인은 권기징(權沂徵)인데 모두 죽었다”고 했다.

이로 보아 윤지헌은 애초에 윤징에게 입계되지 않았다. 입계는 족보상에만 존재하는 서류상의 처리였다. 윤지충이 사학으로 죽었으니, 이때 죽음을 면한 그 아우 윤지헌을 일단 윤징 쪽으로 돌려서 일종의 족보 세탁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현재 「해남윤씨대동보」에는 윤지헌의 맏아들 윤종건(尹鍾建)이 다시 윤지충의 밑으로 입계되어 대를 이은 것으로 나온다. 이것도 조금 이상하다.

「추안급국안」을 통해 볼 때, 윤지헌은 아내 유종항(柳宗恒)과의 사이에 3남 2녀를 두었다. 그녀는 유항검의 사촌 동생으로 알려져 있다. 윤지헌이 처형되고 사흘 뒤인 1801년 10월 15일에 이들에 대한 압송 공문이 내려갔다. 아버지 윤지헌이 대역부도로 능지처사 되었으니 당시 국법에 아들도 모두 사형에 처해야 했다. 하지만 이들은 나이가 어려 처형을 면했다. 아내 유종항은 흑산도에 노비로 끌려갔고, 15세 윤종원(尹鍾遠)은 제주목으로, 13세 윤종근(尹鍾近)은 경상도 거제부로, 4살 윤종득(尹鍾得)은 전라도 해남현으로 관노가 되어 끌려갔다. 두 딸도 노비로 끌려가야 했다. 큰딸 윤영일(尹英日)은 함경도 경흥부(慶興府)의 여종이 되어 갔고, 둘째 딸 윤성애(尹成愛)는 평안도 벽동군으로 보내졌다. 이렇게 해서 윤지충·윤지헌의 집안은 거의 멸문의 화를 입었다. 다블뤼의 「조선순교자비망기」에는 유종항이 거제도로 귀양 가서 1828년경에 사망했고, 막내 윤종득은 해남현에 끌려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이 기록 어디에도 족보에 윤지충에게 입계되었다고 나오는 맏이 윤종건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윤종건이 사형을 면하고, 「추안급국안」의 기록에도 이름이 빠진 것은 윤지충 사망 후에 그를 윤지충에게 입계하여 큰집의 후사를 이었기 때문이다. 이 입양 덕분에 윤종건은 천행으로 목숨을 건졌다. 사학으로 인해 국가에 의해 처형된 집안의 족보는 앞서 황사영의 족보가 그러했듯 훼손되어 명확한 실상을 알기가 어렵다. 어떻게든 집안의 명맥을 잇고 사학의 낙인을 지우려는 안간힘이 이같은 혼란을 빚은 원인이다.



윤지충ㆍ윤지헌 집안의 신앙생활

윤지헌의 숙부 윤징이 정사박해 때 교난으로 순교했다고 할 때, 그 또한 충청관찰사가 신부의 종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천주교 신자임이 탄로 나서, 신앙을 증거하다가 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사박해 때 이도기, 박취득, 원시보, 정산필, 방 프란치스코, 배관겸, 인언민, 이보현을 비롯해 충청도 출신의 초기 신앙인들이 줄줄이 순교했다. 현재 정사박해로 순교한 사람은 이들 8명의 이름만 알려져 있다. 여기에 윤징의 이름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저구리 교회의 지도자였던 윤지헌은 숙부와 함께 잡혀가지는 않았다. 윤징이 진산에서 살고 있었다는 또 하나의 근거다. 사학죄인으로 죽은 윤징의 장례가 윤지헌의 주관으로 통상 절차에 따라 진행될 수 있었던 이유는 남은 자료가 없어 자세한 사정을 알기 어렵다.

한편 「추안급국안」에는 윤지충의 부인과 딸 이야기가 후일담처럼 기록되어 있다. 1791년 윤지충이 처형되고, 그의 아내와 13살 난 딸 하나가 가족으로 남았다. 두 사람은 윤지충의 제자였던 아전 출신 김 토마스의 집에 숨었다. 이후 대략 3년쯤 뒤인 1794년 즈음 윤지충의 딸은 나이가 차서 공주 숯방이(炭坊) 사는 송씨에게 출가한 듯하다. 윤지충의 아내는 딸과 함께 사위 집에 들어가 얹혀살며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 후 이들의 자취는 더 이상 포착되지 않는다. 이상한 것은 족보에 입계되었다고 적힌 양자 윤종건의 그림자가 두 모녀의 삶 속에 전혀 보이지 않는 점이다. 윤종건의 입양 또한 윤지충의 사후에 족보상으로만 이루어진 것일 가능성이 높다. 윤지헌은 4남 2녀의 자녀를 두었던 셈이다.

윤지충은 1782년경 상경해서 명례방 근처에 집을 마련해 공부하다가, 고종사촌인 다산 형제를 통해 천주학에 입문했다. 이후 고향으로 내려온 그가 어머니 안동 권씨와 아우 윤지헌, 그리고 숙부인 윤징 및 아내와 딸에게 전교하여, 온 집안이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윤지헌의 아내와 자녀들 또한 저구리에서 아버지를 따라 신앙생활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윤씨 집안의 이같은 신앙에는 앞서 말했듯 이승훈, 이벽, 다산 형제, 유항검 형제 등과 얽히고설킨 인척 관계가 크게 작용했다.

어머니 권씨는 세상을 뜨면서 천주교의 예법에 따라 조금의 어김 없이 장례를 치를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당시 제사가 교계의 뜨거운 쟁점이었으므로, 어머니의 이 같은 유언은 제사를 지내지 말라는 말과 같았다. 윤지충은 어머니의 유언을 준행하다가 어머니의 조카 권상연과 함께 사형당해 죽었다. 두 사람은 국법에 의해 공식적으로 사형에 처해진 첫 번째 케이스였다. 그 이전 김범우가 배교를 거부하고 단양으로 귀양 가서 죽어 순교했지만, 국법으로 사형을 집행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의미에서 두 사람에게 조선 최초의 순교자란 호칭을 얹는 것은 조금도 지나친 것이 아니다.

이후 윤지헌과 윤지충의 아내와 딸은 가산이 적몰되어 근거를 잃고 폐서인이 된 끝에 감시망을 피해 산골로 숨어들어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윤지헌과 숙부 윤징은 밀접한 관계로 얽혀 신앙생활을 이어갔고, 숙부마저 1797년 정사박해로 죽자, 윤지헌은 약방을 운영하는 한편으로 교계, 특별히 주문모 신부와 유항검 형제를 연결하는 연락책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1801년 신유박해 때까지 적극적 활동을 이어가던 윤지헌은 유항검 형제가 검거되면서 함께 붙들려서 외국 선박을 청해 역모를 꾀하려 했다는 대역부도의 죄로 몰려 능지처사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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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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