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숨은 이야기] 79. 성호 이익의 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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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숨은 이야기] 79. 성호 이익의 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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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 학맥의 수장 성호 “마태오 리치는 성인이라 할 만하다”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79. 성호 이익의 진의

2021.12.19발행 [16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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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호 이익이 홍유한에게 보낸 친필 편지. 홍유한 부친의 부고를 받고 생전의 교분에 대해 말한 내용이다. 종손 홍기홍 제공



성호 선생도 서학을 했다던데요?

서학 도입기에 남인들이 신서파와 공서파로 갈려 싸운 것은 비극이었다. 종교적 신념이 정치적 노선 차이에다 임금 정조의 정국 새판 짜기와 맞물리면서 이들의 싸움은 차츰 전쟁으로 비화되었다. 노론의 입장에서는 구경만 하면 되는 꽃놀이패였다. 이 싸움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남인 학맥의 수장이었던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 자신이었다. 서학에 대한 성호 이익의 모호한 태도가 원인을 제공했다. 서학에 대한 성호의 진의가 어느 지점에 있었는지를 두고는 당시부터 말이 많았다.

안정복은 「천학문답」의 부록에서 어떤 사람이 “성호 선생도 서학을 했다던데 사실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1746년에 자신이 성호와 처음 만나 서양학에 대해 주고받았던 대화를 소개했다. 안정복은 당시 성호가 서양학은 천문 관측과 기계 제작, 수학 분야에 탁월해 중국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 하면서, 이 때문에 더러 자신이 서양학을 한다고 말하는데 참으로 가소로운 얘기라고 했다며, 성호의 서학설을 부정하였다.

안정복은 또 자신이 성호에게 직접 서학 중에 학술로 말할만한 것이 있느냐고 묻자, 성호는 삼혼설(三魂說)과 영혼불멸설, 천당지옥설을 거론한 뒤, 이는 분명한 이단이며 불교의 별파에 지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고 썼다. 그 뒤에도 안정복은 성호에게 다시 서학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한 번 더 물었다. 이때도 성호는 자신이 천주설을 믿지는 않는다면서, 「칠극」 같은 책은 「사물잠(四勿箴)」의 풀이 같은 것으로, 중간중간 폐부를 찌르는 말이 많지만 문인의 재담이나 아이들의 말장난 같은 데 불과하고, 그중 경어(警語)만 요약한다면 유자의 극기 공부에 도움은 될 것이라고 대답하더라고 했다.

안정복은 이 문답을 소개한 뒤, “지금 선생이 나와 더불어 문답한 말 및 이 발문을 가지고 본다면 과연 선생이 천학을 존신(尊信)하였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무식한 젊은 자들이 자신들이 빠져 들어갔다는 것 때문에 사문(師門)까지 끌어다가 이를 합리화하려는 것이니, 거리낌이 없는 소인들이라 할 수 있겠다. 다행히 내가 지금 살아있어서 그 시비를 가릴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나마저 죽었더라면 후생들이 틀림없이 그 말을 믿었을 것이다”라고 성호의 서학 존신설을 확고하게 부정하였다.

상대방은 그래도 안정복에게 집요하게 되물었다. “성호 선생께서 마태오 리치를 성인이라고까지 하셨다던데요? 서학을 믿는 무리 중에 이 말을 핑계 삼아 말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안정복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성인도 성인 나름이다. 선생께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했다 하더라도 서사(西士)의 재주와 식견이 대단한 것을 말한 것이지 어찌 요순이나 주공, 공자 같은 성인과 동격에 올린 것이겠는가? 안타깝다.”

하지만 안정복의 이 같은 해명은 사실과 달랐다. 성호는 마태오 리치를 분명히 성인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제자 신후담(愼後聃, 1702~1761)의 「기문편(紀聞編)」 첫 대목이 그 근거다. 안정복이 성호를 찾아갔던 시점보다 무려 22년 전인 1724년 3월 21일 아현으로 성호를 찾아간 신후담이 마태오 리치에 대해 묻자, 성호가 대답했다. “이 사람의 학문은 허투루 보아서는 안 된다. 이제 그가 지은 「천주실의」, 「천학종정(天學宗正)」 등의 여러 책을 살펴보면, 비록 그 도리가 우리 유학에 꼭 합치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도에 나아가 도달한 바를 논한다면 또한 성인이라 말할 만하다.” 44세의 성호는 23세 청년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마태오 리치를 성인이라 할 만하다고 분명히 말했다.



신후담과의 토론과 진의의 소재처

1724년 7월 17일에 신후담은 두 번째로 성호를 찾아가 선생님이 서학을 높이시는 취지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따져 물었다. 성호는 한 번 더 “마태오 리치의 학문을 허투루 보아서는 안 되네(西泰之學, 不可歇看)”라고 말했다. 서태(西泰)는 마태오 리치의 자(字)이다. 해를 넘겨 1725년 7월 27일에 신후담이 다시 찾아갔을 때도 서학을 옹호하는 성호와 이에 반발하는 신후담의 입장은 팽팽하게 대립했다.

성호는 신후담이 서학에 대해 오해하고 있으니 이를 풀어주겠다며, “그들이 품은 생각이 광대하고 의사가 넓고 깊은 것을 생각할 때, 세속의 악착같고 비루하여 좁아터짐과 사물과 나를 견주어 헤아리는 사사로움을 깨뜨리기에 충분하다”고 칭찬하였다. 나아가 천주설조차도 깊이 고찰해보면 유가 경전에 실린 상제귀신(上帝鬼神)의 주장과 암암리에 합치한다고까지 주장했다. 1726년 11월 25일의 네 번째 논쟁에서도 성호는 서사(西士)가 세상을 속이려는 자들이 아니고, 태극을 배척한 이론만 해도 나름대로 견해가 있다며 끝내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당시 성호는 젊은 신후담의 문제 제기에 조금 당황했던 듯하다. 새파란 젊은이의 혈기를 맞상대하기도 민망하고, 찍어 누르기는 힘든 예민한 주제였다. 성호는 서학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적극적으로 긍정하지도 않았다. 여운을 남겼다. 이것이 결국은 훗날 제자 그룹을 정반대의 두 길로 갈라서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성호의 답변 태도는 물불을 안 가리고 반대의 논리로 각을 세워 달려드는 젊은 혈기 앞에 이를 달래 예봉을 꺾으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아직 잘 모르면서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 마라. 공부해 보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성호의 대답 속에는 난감해 하면서도 어떻게든 그를 설득해보려는 안타까움이 읽힌다.

안정복이 인용한 글에서조차 성호는 “이단의 글이라 하더라도 그 말이 옳으면 취할 뿐이다. 군자가 사람들과 더불어 선을 행하는 데에 있어서 어찌 피차의 구별을 두겠는가. 요컨대 마땅히 그 단서를 알아서 취해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서학이 이단이라 하더라도 옳으면 취해야 하니, 옳고 그름을 떠나 피차의 구별만으로 나누는 것은 안된다고 성호는 명확하게 말한 셈이다.

성호는 서학에 대한 자기 내면의 강한 이끌림을 굳이 언표화하지 않았다. 「성호사설」에 쓴 「칠극」 항목 및 문집에 수록된 「발천주실의(跋天主實義)」 같은 글이 그렇다. 서학을 대놓고 높이는 것이 조선 사회에 어떤 문제를 야기할 지 성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신후담의 기록에 남은 성호의 답변은 그가 문집에 남긴 글과는 사뭇 톤이 다르다.

강세정의 「송담유록」 첫 단락 또한 서학에 대한 성호의 태도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성호 선생께서 일찍이 서양의 학문에 대해 논하면서 마태오 리치는 신성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때문에 서양학이 성하게 된 뒤에 사람들이 간혹 그가 깊이 믿었다고 의심하여 망령되이 비방하는 논의를 더하는 자가 있었다. 하지만 선생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서학은 불교의 나머지 유파로 아교와 칠이 엉긴 단지 안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니, 애석하다.’ 이 같은 두 도막의 말에서 그가 엄하게 서학을 배척한 것을 추단할 수가 있다. 그가 신성하다고 여겨 취했던 것은 다만 천문과 역법의 기교 같은 여러 조목이었을 뿐이다. 뒷 사람들이 알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

뒤쪽 얘기는 강세정이 성호를 변호해 주느라 한 말이다. 앞서 안정복과 같은 선상의 논리다. 남인 학맥에서 성호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고, 안고 가려니 서학 문제가 걸리는지라 어떻게든 성호가 서학을 믿은 것이 아니라, 서양의 천문역법과 과학기술 및 수학을 높이 평가해 받아들였던 것일 뿐이라는 선에서 이 문제를 봉합하려 했던 것이다.



성호 직계의 서학 존신(尊信)

성호 사후 성호학파는 서학에 깊이 빠져든 그룹과 서학을 격렬하게 배격한 그룹으로 분화되었다. 묘한 것은 성호의 집안과 성호가 특별히 아꼈던 신진 그룹 가운데 서학을 존신하는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었던 점이다. 가까이에서 성호의 속마음을 알만한 위치에 있던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서학에 빠져들었다.

이철환(李煥, 1722~1779)은 그다지 알려진 이름이 아니다. 강세정이 쓴 「송담유록」에 그에 대한 다음 대목이 눈길을 끈다. “이철환은 자가 길보(吉甫)로 성호의 종손(從孫)이다. 호는 예헌(例軒)이다. 총명함이 남보다 뛰어났고, 문사(文詞)에 대한 얘기를 잘했다. 과거 시험 공부하는 것은 즐기지 않았지만, 기이한 글과 궁벽한 책에 두루 통하지 않음이 없었다. 웅장한 말로 언변이 뛰어나 장하기가 마치 큰 강물과 같았다. 이따금 사람과 마주해 이야기를 하면 참으로 기이하였다. 그의 말에는 서양 사람 마태오 리치의 주장이 많았다. 우리나라 인사가 실로 듣거나 본 적이 드문 내용이어서, 듣는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당세에 박학한 사람 중에 그보다 나은 이가 없을 것으로만 여겼다. 그 또한 우뚝이 자신을 높게 여겨 세상 사람을 낮추어 보는 태도가 일이나 행동에서 드러났다. 나무 심는 법 같은 것도 모두 서양의 방법을 써서, 그 법이 기묘하지 않음이 없었다. 이를 본 자들이 또한 기이하게 여겼다.”

이철환과 서학의 연결 고리는 그간 노출된 적이 없다. 여기에 더해 이가환은 이철환과 사촌 간이었다. 「송담유록」의 이어지는 단락에서는 이가환을 두고 “벼슬에 오르기 전부터 서학(西學)을 몹시 믿었으니, 이철환에게서 전수받은 것으로, 참으로 이른바 난형난제라 할 것이다. 남몰래 서로 배워 익히면서도 겉으로는 안 그런 척 꾸몄다. 그의 무리인 이벽과 이기양, 권일신, 이승훈 등은 바로 대대로 벼슬한 집안인 데다 얼마간 재예(才藝)를 지닌 자들이었다. 남몰래 사귐을 맺어 오로지 사학(邪學)을 공부하면서 벗들을 부르고 부류를 끌어모았다. 앞장서서 간사함에 빠져 그 주장이 크게 퍼지자 식견 있는 이들이 남몰래 탄식하였다”고 적었다.

이렇듯 정작 성호 일문에서 서학에 경도된 그룹이 모두 후손 그룹에 집중되어 있는 점은 안정복 등의 말에 힘을 실을 수 없게 만든다. 성호에게서 직접 배운 이병휴의 문하에 권철신, 이기양, 이벽 등 신서파의 핵심 인물들이 포진해 있었던 것만 봐도 그렇고, 성호의 종손인 이철환과 이가환의 경우 당대 서학에 대한 식견이 맞겨룰 자가 없다는 평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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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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