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숨은 이야기] 81. 보험 들기 - 갈라진 남인, 노론과 손잡은 공서파에 맞서 신서파는 채제공과 유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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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숨은 이야기] 81. 보험 들기 - 갈라진 남인, 노론과 손잡은 공서파에 맞서 신서파는 채제공과 유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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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진 남인, 노론과 손잡은 공서파에 맞서 신서파는 채제공과 유착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81. 보험 들기

2022.01.01발행 [16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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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위편」에 실린 이기경의 「초토신 상소」.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토로한 이 상소문으로 이기경은 상복을 입은 채로 함경도로 귀양가야만 했다.



서학에서 돈과 곡식이 나온다

정조는 채제공 휘하의 이가환과 정약용 등 참모진으로 자신의 개혁 구상을 이끌어가려 했다. 이들은 똑똑하고 반짝반짝 빛났다. 기성의 권력을 추구하지 않았다. 이들과 함께라면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들이 서학에 깊이 이끌렸던 부분은 생각지 못한 변수였다. 채제공의 손발로 부상하던 이들 그룹이 서학 문제에 연루되면서, 정조와 채제공으로 이어지는 라인업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했다. 채제공에게 내쳐진 홍당(洪黨)의 남인들은 적의 적인 노론 세력과 손을 잡고 반채 전선의 동력을 이어갔다. 공서파들은 서학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시빗거리가 생기면 사냥개처럼 물고 늘어졌다. 정미반회사건이 출발점이었고, 진산사건은 발화점이었다.

신서파들이 자신들의 조직 보호를 위해 든 보험은 채제공과의 유착이었다. 이재기의 「눌암기략」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이재기의 집안 아저씨뻘 되는 이도길(李道吉)이 1798년 산송(山訟)으로 해미의 감옥에 갇혔을 때였다. 같은 감방의 죄수 중 사학(邪學)으로 붙잡혀 와 갇힌 자가 있었다. 하루는 그가 서학책의 묘한 대목을 일러주며 말했다. “서학은 신분을 펴는 계단과 사다리입니다. 지금 채제공 대감과 이가환 판서 또한 모두 외워 본받고 있고, 선비의 과거 합격과 벼슬, 천한 사람의 돈과 곡식이 모두 이 가운데로부터 나옵니다.”

출세를 하고 싶거든 서학을 믿어라. 채제공과 이가환이 모두 천주교 신자이니, 과거 합격과 벼슬 승진도 이 줄을 잡지 않고는 안 된다. 돈줄도 다 여기서 나온다. 이 이야기를 소개한 뒤 이재기는 이렇게 썼다. 이는 틀림없이 홍낙민의 무리가 채제공을 빙자해 팔아먹은 말인데도 어리석은 백성들이 취해 믿곤 한다. 이것을 보면 채제공이 사학의 우두머리가 된다는 것은 홍낙민의 무리에게서 나온 말이지, 홍낙안이나 이기경에게서 나온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서학을 믿는 집단들이 다분히 의도적으로 권력층과 자신들의 밀착 관계를 과시함으로써 척사파의 재갈을 물리려 한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1787년 정미반회사건과 1791년 진산사건 등이 신서파에게 불똥이 크게 튀지 않고 중간에 유야무야 되었던 것은 이 같은 역학 관계가 없지 않았다.

이기경은 다산과는 단짝 친구였고, 성균관 시절부터 선의의 경쟁자였다. 이기경은 정약용을 좋아했고 또 아꼈다. 정약용이 그의 집이 있던 용산까지 찾아가서 공부를 함께 한 일도 있었다. 정미반회사건도 이기경이 중간에서 말을 얼버무리는 통에 큰 문제 없이 넘어갔다. 두 사람의 관계가 결정적으로 틀어진 것은 1791년 진산사건 이후 홍낙안이 채제공에게 보낸 공개장인 장서(長書) 사건 이후의 일 때문이었다.



초토신 상소

1791년 당시 이기경은 부친의 상중이었다. 홍낙안에 의해 서학 관련 논의가 다시 점화되면서 4년 전 정미반회사건이 다시 소환되었다. 상소가 빗발쳤고, 여론이 들끓었다. 이기경은 첫 발설자로 채제공 앞에 불려갔다. 1787년 당시 자신도 이승훈과 함께 사서를 읽었고, 이후 배척하게 된 사정을 진술하면서 이승훈과 정약용을 보호하는 취지의 진술을 하고 돌아왔다.

이기경은 바로 정약용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대답 내용을 전달하고, 이 대답에 발맞춰서 대응할 것을 귀띔해 주었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이기경의 마음속에 정약용을 위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에 정약용은 이승훈 형제에게 반회에서 자신들이 서학책을 본 일을 임금께 사실대로 고하자고 했다. 하지만 이승훈 형제는 이기경이 이미 제 입으로 밀고했다고 자수한 터에 우리가 사실대로 말할 이유가 없다면서 반회에서 서학책 읽은 일이 이기경의 무고라며 끝까지 잡아뗐다. 결과적으로 이기경만 뒤통수를 제대로 맞고 말았다.

보호해주려고 진술 내용을 미리 알려주었더니, 이를 역이용해서 자기를 무고죄로 밀어 넣고 자신들은 무죄 방면되었다. 실로 야비한 처사였다. 이 일로 정약용은 이기경에게 큰 부채감을 떠안았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예상외의 전개에 초조해진 이기경이 여러 차례 자신의 입장을 전달하려 했지만 길이 막혔고, 심판 역할을 해주어야 할 채제공은 저들의 입장만 두둔하고 있었다. 더 이상 앉아 당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 이기경이 꺼내 든 카드가 바로 초토신(草土臣) 상소였다.

상중에 상주가 쓴 상소문을 받아든 정조는 조정의 수치요 세도(世道)의 변괴라며 불같이 노했다. 천주학의 원흉을 처단하라고 상소했더니 무고죄로 몰려 유배형에 처해지고, 사학 죄인에게는 면죄부를 주었다. 그는 이 일로 해명의 기회를 얻기는커녕 상복을 입은 채 함경도 경원 땅으로 사면 없는 귀양길에 올라야 했다.

이 일에 대한 「벽위편」의 평가는 이러했다. “이때 사학의 부류가 홍낙안과 이기경을 헐뜯어, 쇠를 녹이고 뼈를 녹여 수레 가득 귀신을 실을 기세였다. 비록 공정한 마음과 안목을 지닌 사람이라도 또한 모두 입을 다물고 사실이 그렇지 않음을 밝히지 못했다.”



이승훈 형제의 책략

초기 이른바 신서파와 공서파의 공방에서 피해는 신서파보다 공서파 쪽이 훨씬 더 컸다. 그 중심에는 이승훈 형제의 책략가적 술수가 늘 있었다. 이들은 앞서 이기경의 예처럼 정공법이 아닌 속임수나 잔꾀로 문제를 해결했다. 정면 돌파하지 않고 꼭 권도(權道)를 동원했다. 성균관 유생들이 척사의 통문을 돌린다는 소문이 나면, 참여자를 돈으로 매수해서 통문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그런 방식이었다. 평택 현감으로 내려갔다가 공자의 사당에 절을 올리지 않은 일로 문제가 되었을 때도, 암행어사로 사촌 제부 김희채를 콕 찍어 내려보내 고발자가 도리어 무고죄로 매 맞아 죽는 일까지 있었다. 술수가 통하지 않으면, 위협과 공갈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로서는 자신들의 존립과 생사가 걸린 문제여서 그만큼 필사적이었다.

신서파가 채제공 서손(庶孫)의 글공부 선생으로 홍교만의 서종제(庶弟)인 홍익만(洪翼萬)을 추천해서 심은 것도 그 같은 책략의 하나였다. 채제공은 홍익만이 천주교 신자인 것을 모른 채, 정동에 집을 사주고 양식과 돈을 넉넉하게 대주기까지 했다. 소문을 들은 이재기가 측근인 교리 이경명을 찾아가 말했다. “홍익만은 권철신의 외종이요.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서학을 익혀, 그 독에 가장 심하게 쏘인 자요. 대신께서 모르고 그런 것일 테지만 누가 됨이 클 것이요. 속히 알려 드리시오.”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채제공이 그를 내치려 하자, 홍익만이 도움을 청했고 서학의 무리가 채홍원을 찾아가 모함이라고 둘러댔다. 서손은 결국 여러 해 동안 홍익만에게 공부를 배웠다. 나중에 서학 두둔의 증거로 이 문제가 공론화되어, 채제공 사후에 관작을 추탈하는 한 명분이 되었다. 역시 「송담유록」에 나온다.

1801년 12월 15일에 대사간 유한녕 등이 올린 연명(聯名) 차자(箚子)에서 “채제공은 바로 사역(邪逆)의 근저입니다. 평소에 흉하고 잘 속이는 성품으로 허물을 꾸미는 데 능하고, 흉악하고 교활한 습성을 아울러서 근심을 막는 데 익숙하였습니다. 정약종의 온 집안이 사학의 늪에 빠졌건만 그 누이를 며느리로 삼아, 마침내 추악한 비방을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홍익만은 사학하는 무리 가운데 두령으로, 서얼의 자손이 공부함을 가탁하여 끌어다가 측실의 좋은 스승으로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한 것이 그 뚜렷한 예에 해당한다.

이들은 도처에 보험을 들어두었다. 요소요소에 위험을 차단할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었다. 「송담유록」에는 채제공의 양자 채홍원이 사람됨이 얄팍하고 편협했다고 하고, 사학하는 무리가 채제공에게 붙지 않고는 기대어 돌아갈 데가 없어 밤낮 모시고 앉아 있었고, 채홍원과도 떨어지지 않았다고 썼다. 그 결과 채홍원은 일이 생길 때마다 공서파를 배척하여, 그들이 모함으로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씌운다면서 신서파를 두둔했다고 했다.



척사파의 해묵은 유감

1795년 겨울, 채제공이 이가환과 정약용, 이승훈 등을 손절할 결심으로 이들의 죄를 청하는 차자를 올리려 했을 때 일이다. 채제공은 차자의 초고를 완성해 보려 아래에 놓아두고 있었다. 새벽에 채홍원이 아침 문안을 왔다가 간밤에 정약용이 다녀간 일을 고했다. 정약용이 채홍원에게 했다는 말은 이랬다. “대감께서 우리 세 사람을 죽이려 하시는데, 세 사람이 죽으면 자네가 홀로 능히 편안할 수 있겠는가? 자네는 물에서 사람을 건지면 그 사람이 반드시 손을 당겨서 들어간다고 한 말을 들어보지 못했던가?” 명백한 협박이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채제공은 눈을 부릅뜨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침밥을 먹는데 수저를 거꾸로 세워 밥상을 치는 소리가 탕탕 들렸다. 종일 분노하던 그는 밤중에 결국 차자의 초고를 꺼내 불에 태워 버리고 말았다. 「눌암기략」에 나온다.

신서파는 이런 수단을 통해 결정적인 순간에 채제공의 결심을 차단하고, 위기를 기회로 돌려 상황을 역전시키는 데 성공하곤 했다. 여기에 더해 노론의 전제적 권력을 차단해 왕권을 바로 세우려 한 정조의 정략적 판단 또한 이들에게 극적으로 심폐소생술을 시켜주었다. 신서파의 교활한 책동에 공서파들은 번번이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결정적인 한 방에도 이들은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걸렸다 싶으면 어느 순간 더 큰 쓰나미가 공서파의 뒤통수를 쳐서 타도의 야망을 초토화시켰다.

다음은 「벽위편」의 한 대목이다. “이기경은 먼 변방으로 귀양 가고, 목인규는 시골로 쫓겨났으며, 홍낙안은 위험한 지역에 여러 번 쫓겨나 거의 죽을 뻔하다가 겨우 살아났다. 목만중 또한 폐하여지고 물리침을 당해 문을 닫아걸었다. 그래서 척사하는 자들이 두려워 떨며 숨을 죽인 것이 10여 년이었다. 사람들이 혹 사학에 대해 말하면 사학하는 부류들이 이를 지목하여 홍낙안의 무리라고 하므로 척사란 두 글자는 문득 꺼리는 말이 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 이후에야 공서파들은 비로소 묵은 원한을 풀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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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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