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16) 무명 화가의 ‘필리오케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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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16) 무명 화가의 ‘필리오케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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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16) 무명 화가의 ‘필리오케 교리’

삼위일체 교리 논쟁, 동·서 교회 분열의 기폭제로 작용

 

 

프랑스 볼봉에서 1450년경 소개된 ‘필리오케(Filioque) 교리’, 파리 루브르 박물관.

 

 

5세기부터 8세기까지 막연하지만 오늘날 ‘유럽’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형이 형성되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여러 가지 중대한 국면이 나타났는데, 이를 크게 몇 가지로 함축하면 ①프랑크 왕국의 성립 ②신성로마제국의 수립 ③이슬람 팽창 ④수도원 운동 ⑤동서 교회의 분열을 들 수 있다. 이 사건들은 각기 종교적, 정치적 측면에서 이후 서방 세계의 중세 역사를 결정짓는 중대한 국면으로 작용하였다. 동시에 각 사건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얽히고설켜 복잡하게 전개되면서 중세 유럽의 역사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했다.

 

가령 570년 마호메트의 탄생으로 시작된 이슬람 세력은 과거 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북아프리카와 동지중해를 그리스도교의 영역에서 빼앗아 갔다. 그 사이 유럽을 주도하던 프랑크 왕국에서는 새로운 수도원 운동이 일어나면서 비잔틴 황제의 명령을 받던 로마 교황의 권위를 세워나갔고, 이에 힘입은 교황은 프랑크 왕국과 비잔틴 동로마 제국 간 세력 싸움에서 확실한 결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 로마 교황과 프랑크 왕국의 왕, 동로마 제국 황제의 결단은 중세 유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726년 동로마 제국 황제 레오 3세에 의한 성상파괴령에 이어 로마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결정적으로 갈라놓은 1054년의 ‘필리오케 교리’는 별것 아닌 것 같은 문제가 종국에는 동서 교회 대분열의 기폭제가 되는 일대 사건이 되었다. 이로써 로마 교회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세력에서 완전히 벗어나 로마 교회 총대주교, 곧 교황과 로마 교회의 정치적 자립이 시작되었다.

 

 

삼위일체의 필리오케 교리

 

소개하는 그림은 1450년경 한 무명 화가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으로 프로방스의 성 아그리콜이 소개한 삼위일체의 ‘필리오케(Filioque) 교리’다. 프랑스 볼봉(Boulbon)에 있는 생 마르셀랭(Saint Marcellin) 소성당 제단 위에 있던 것으로 지금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필리오케(Filique)는 ‘e dal Figlio(그리고 성자로부터)’라는 뜻의 라틴어다. 589년 제3차 톨레도 시노드에서 아직 스페인에 남아 있던 아리우스파를 경계할 목적으로 이전 문서를 참조해 교리의 일관성을 자세히 지정하기 위해 서방 교회에서 라틴어 번역 사도신경에 첨가한 말이다. 교부들이 모두 참석하지 않은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에서 채택된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그리스어 원문에는 없다. 이 때문에 동·서방 교회의 의견이 달라서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충돌은 번역의 문제가 신학 문제로 발전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처음부터 두 교회 간 권위의 문제였다.

 

성령을 설명하면서 헬라어 신경은 “성령은 성부에게서 발(發)하시고(τ εκ το Πατρ εκπορευμενον)”라고 했다. 라틴어 신경은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qui ex Patre Filique procdit)”라고 돼 있다. 이것은 동방 교회에서 사용하던 헬라어 신경과 서방 교회에서 사용한 라틴어 신경 간 불일치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신학적 논쟁에 정치적 문제도 얽혀

 

796년 프리울리 시노드에서 프랑크 왕국의 아킬레이아 파울리노 총대주교는 필리오케를 신경에 삽입할 것을 지시했고, 800년경 전체 프랑크 왕국의 미사에서 필리오케가 들어간 신경이 널리 퍼졌다. 이것이 847년 프랑크 왕국의 수도자들에 의해 예루살렘에 소개되자 동방 교회 수도자들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양측 교회 간 문제로 쟁점화 되었다.

 

867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포티우스(Phtios, 820?~893)는 필리오케를 신경에서 삭제할 것을 서방 교회에 강력히 요구했다. 이것은 정치적인 문제와 결부돼 있었다. 당시 동방 교회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과 함께 로마를 여전히 자기네 통치 아래에 두고자 했고, 로마는 프랑크 왕국의 도움으로 동방-비잔틴 황제 중심의 교회에서 벗어나려 한 것이 이 문제와 맞물린 것이다. 이것은 뒤이어 교황 수위권(首位權) 논쟁 등 여러 가지 신학적인 문제와 함께 동·서방 교회의 갈등이 깊어지는 요인이 되었다.

 

동방 교회의 주장이 강해질수록 서방 교회는 이를 공식적으로 부정하며, 베드로 사도의 무덤좌(座)와 필리오케를 내세워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로마 교회가 동방 교회와 분리하는 정체성은 베드로 사도의 무덤이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 사도는 성자에게 직접 수위권을 받았다. 그래서 성령을 이야기할 때 성부만이 아니라, 성자에게서 발하신다는 필리오케의 핵심은 동방 교회를 자극하는 핵심 문구가 되었다. 왜냐하면 베드로 사도좌가 있는 로마 교회는 성자에게 나오는 성령의 이끄심을 직접 받고 있다는, 한마디로 동방 교회보다 우위에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문구였기 때문이다. 동방 교회가 기를 쓰고 이를 막으려고 한 이유다.

 

 

동방정교회와 라틴교회로 분열

 

결과적으로 ‘필리오케’가 동·서방 교회 대분열의 가장 중추적인 교리로 작용했다고 하지만, 사실 이것은 로마제국의 분열에 이어 수세기 동안 지속되어 온 정치적인 힘의 논리에 맞선 결과에 불과하다. 이후에도 동방 교회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는 자신의 관할지역에서 라틴전례의 사용을 금했고, 로마 교회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에게 ‘세계총대주교’라는 칭호를 폐기하고 ‘필리오케’가 들어간 신경을 공식 채택할 것을 요구하는 등 양측의 공방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1054년 동방 교회의 총대주교는 교황 특사 추기경을, 특사는 총대주교를 서로 파문하기에 이르렀고, 동서 교회는 ‘동방정교회’와 ‘라틴교회(로마가톨릭)’로 분열하고 말았다.

 

이후 역사 속에서 동·서방 교회의 화해를 모색하여 개최된 리용 공의회(1274년)와 피렌체 공의회(1439년)는 동방 교회가 필리오케의 신경 삽입은 거절했으나 그 교리는 승인함으로써 필리오케에 관한 신학적 논쟁은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 소개하는 작품은 동·서방 교회가 ‘필리오케’를 인정하고 나름의 합의를 이룬 것을 기념해 그려진 1450년경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472년 동방 교회는 단독으로 개최한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회의에서 앞서 리용과 피렌체에서의 합의를 정식으로 파기함으로써 동·서방 교회는 또 다시 결별하기에 이르고 만다.

 

하지만 동·서방 교회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화해의 길을 모색했다. 과거 상호 파문과 관련해 서방 교회가 한 파문은 교황이 한 것이 아니라 특사가 한 것이라 그 합법성에 문제가 제기되었고, 동방 교회가 한 파문도 교황이나 서방 교회 전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특사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적인 것이었다며 교회법상 동·서방 교회가 서로를 파문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가 유력해졌다. 이에 1965년 성 바오로 6세 교황과 콘스탄티노폴리스 아테나고라스 1세 총대주교는 1054년의 상호 파문을 무효로 처리하고 화해하였다.

 

 

작품 속으로

 

작품은 간결하다.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 논쟁의 소지를 전혀 주지 않기 위한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엿볼 수가 있다.

 

가운데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있고, 양쪽에 성부와 성자가 있다. 성부와 성자의 입에서 나오는 빛줄기를 통해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發)하심”을 표현하고 있다. 성자에게서 발하심(필리오케)을 표현하기 위해 십자가의 수난과 머리 위에 있는 죄명이 그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하게 해 주고 있다. 작품 자체로 놓고 볼 때 너무도 단순하여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한 작가가 그린 이 작품에 담긴 교회의 역사는 실로 엄청나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9월 6일, 김혜경(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체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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