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19) 구스타브 도레의 ‘안티오키아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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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19) 구스타브 도레의 ‘안티오키아 학살’

관리자 0 1038 0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19) 구스타브 도레의 ‘안티오키아 학살’

십자군의 칼은 절규하는 무슬림과 그리스도인마저 처참히 살육 

 

 

구스타브 도레, ‘안티오키아 학살’, 삽화, 1877년, 파리.

 

 

무슬림 세력에 대항한 십자군

 

632년 무함마드가 사망한 후 그를 추종하던 세력은 순식간에 아라비아 반도 주변의 이교도들을 소탕하고, 아라비아 반도 북서부에 위치한 비잔틴 제국과 가까운 타부크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636년 야르무크 전투에서 무슬림은 비잔틴 제국을 상대로 완승하면서 아나톨리아 남부의 지배권을 확보했다. 이것은 무함마드 이후, 이슬람이 그리스도교 지역인 비잔틴 영내로 진출할 것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 후 계속해서 몇백 년에 걸쳐 무슬림 세력은 비잔틴 제국을 괴롭혔고,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등 과거 비잔틴 제국의 땅이었던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하나씩 점령했다. 아랍 무슬림들은 이제 아르메니아로 향했고, 동시에 이집트로도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집트 태생의 영국인 이슬람학자 밧 예올(Bat Ye’or)은 저서 「The Decline of Eastern Christianity Under Islam: From Jihd to Dhimmitude」에서 “성당으로 도망간 여성과 어린이들까지 모조리 살해당했다”고 적었다.

 

이에 비잔틴 제국의 요청에 따라 일어난 서방 교회의 십자군 결성은 나름대로 충분한 당위성이 확보되었다. 복자 우르바노 2세 교황의 성지 해방을 위한 제1차 십자군의 선포는 “하느님의 뜻”(Deus vult)으로 제시되었다. 십자군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모든 빚을 탕감받고, 재산을 보호받으며, 죄를 용서받았다. 이런 혜택은 교황의 부름에 응답한 사람에 대한 대중의 지지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참전하는 사람들의 의도는 모두 달랐다. 어떤 사람은 종교적인 열정과 하느님을 향한 사랑으로, 어떤 사람은 빚을 탕감받기 위해, 또 어떤 사람은 모험심에서, 어떤 사람은 약탈을 통해 한몫 잡으려는 의도 등 마음에 품은 의도들은 결코 고상하거나 원대하지만은 않았다.

 

1097년 십자군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집결했고, 거기서 알레시오 1세 콤메노의 도움으로 소아시아 반대쪽 해안을 통과했다. 그리고 3개월 후에는 시리아 해안에 도착했고, 9개월 후에는 드디어 아름다운 도시 안티오키아에 이르렀다. 1098년 6월 3일 십자군은 안티오키아를 차지하고 있던 무슬림들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죽이고 안티오키아를 차지했다. 과거 그들이 한 그대로, 이제 십자군이 그들에게 한 것이다.

 

 

삽화가, 독창적인 예술적 기조 확립

 

소개하는 작품은 구스타브 도레(Gustave Dor, 1832~1883)의 삽화 ‘안티오키아 학살’(파리, 1877)이다. 구스타브 도레는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하여 6살에 이미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고, 12살에 자기가 그린 그림을 돌에 새겨 석판화를 제작했으며, 15살에 신문에 실었던 만평집과 삽화를 실은 책을 출판하였다. 1847~1854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작품들을 보면서 그림을 공부했고, 많은 양의 캐리커처와 석판화를 제작하며 독창적인 예술적 기조를 확립했다. 그는 성경 이야기를 판화로 제작하고 많은 문학 작품에 삽화를 그렸다. 당시 프랑스의 자본가들 사이에서는 그의 작품을 소유하는 것이 유행할 정도였다고 한다.

 

절충적이고 다면체적인 도레의 예술은 여러 면에서 만화와 영화의 탄생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무한한 상상력과 그래픽 작품들은 20세기 위대한 영화감독들에게 도상학적인 중요한 영감을 주는 한편, 애니메이션 장편 영화에서도 월트 디즈니와 팀 버튼은 물론, ‘슈렉’의 장화 신은 고양이에 이르기까지 그의 삽화는 다양하게 힘을 발휘했다. 대표작으로 1872년에 발표한 런던의 빈민촌의 더럽고 참담한 삶을 묘사한 판화 ‘런던 순례’, 에드가 알란 포우의 ‘갈가마귀’가 있고, 삽화를 넣어 출판한 책들로 밀턴의 「실락원」, 단테의 「신곡」, 영어판 「구ㆍ신약 성경」, 불어판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등이 있다. ‘안티오키아 학살’은 「십자군」이라는 역사서에 담긴 삽화다.

 

 

뺏고 뺏기는 안티오키아 공방전

 

비잔틴 제국의 도시였던 안티오키아를 셀주크 왕조가 빼앗은 것은 1085년이었다. 안티오키아 성은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 때, 동로마 제국의 건축 기술로 튼튼하게 잘 지은 성벽이었다. 1088년부터 안티오키아를 통치한 야기 시얀(Yaghi-Siyan)은 1097년 아나톨리아 반도로 들어온 십자군을 의식하고, 주변의 이슬람 세력에 도움을 요청한 상태였다. 야기 시얀은 안티오키아의 정교회 총대주교를 감옥에 가두고 그리스와 아르메니아 정교회 신자들을 모두 추방하는 한편, 그 수가 얼마 안 되는 시리아 정교회 신자들만 거주를 허락했다.

 

십자군과 셀주크 무슬림군이 안티오키아를 두고 공방전을 벌인 것은 모두 두 차례다. 제1차는 이미 무슬림의 도시가 되어 버린 안티오키아를 차지하기 위해 십자군이 벌인 공성전으로 1097년 10월 21일 시작해 1098년 6월 2일 도시를 함락하면서 종료되었다. 제2차는 무슬림 군대가 십자군에 대항해 1098년 6월 7~28일 벌인 공성전으로 여기서도 십자군이 승리했다.

 

그 과정을 좀 더 들여다보면, 십자군이 처음 안티오키아 성 바깥 오론테스 강변에 모습을 보인 것은 1097년 10월 20일이었다. 군대를 이끈 장수는 3명으로 부용의 고드프루아, 타란토의 보에몽, 톨로사의 백작 레몽 4세였다. 고드프루아와 보에몽은 레몽의 직접 전투를 반대하며 공성전을 주장했다. 생각보다 길어진 공성전은 오히려 십자군을 괴롭혔다. 12월이 되자 고드프루아가 병으로 쓰러졌고, 충분했던 식량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2월 말 보에몽과 플랑드르 백작 로베르가 병력 2만을 이끌고 식량 조달을 위해 남쪽으로 향하자, 포위 병력이 줄어든 틈을 타서 야기 시얀은 레몽의 야영지를 습격했다. 레몽이 물리치기는 했지만 피해는 적지 않았다. 보에몽과 로베르의 군대도 야기 시얀을 도우러 오던 다마스쿠스의 두카크의 군대와 충돌하여 결국 승리했으나 식량 조달에는 실패한 채 안티오키아로 돌아와야 했다.

 

안티오키아를 포위한 십자군의 야영지에는 식량 부족으로 기아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사람과 말이 차례로 죽어갔다. 전체 군인 7명 중 1명이 굶어 죽었고, 군마의 수도 급격히 줄었다. 굶주림을 견디다 못한 병사들은 적병의 사체와 죽은 말을 먹었다. 시리아의 그리스도인들과 추방되어 키프로스 섬에 있던 정교회의 총대주교가 약간의 식량을 보내준 것으로 기아를 해결하기란 역부족이었다. 1098년 1월, 기사와 병사 중에서 탈주자가 나오기 시작했고, 그중에 은수자 피에트로도 있어 그의 명성은 추락하고 말았다.

 

1098년 2월, 비잔틴 제국의 장수이자 황제의 특사로 십자군에 합류하여 아나톨리아 반도의 길 안내 및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던 타티키오스가 돌연 십자군을 떠났다. 알렉시우스 1세의 딸 안나 콤네나가 쓴 역사서에 따르면, 십자군이 계속해서 타티키오스의 조언을 거부했고, 보에몽과 십자군의 장수들은 그를 믿지 못해 암살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문이 결국 그를 떠나게 했다고 전했다. 이에 보에몽은 타티키오스를 욕하며, 안티오키아를 함락해도 그 땅은 비잔틴에 줄 것이 아니라 자기가 차지하겠다고 주장했다. 십자군의 장수들 사이에서 이권 다툼이 시작된 것이다.

 

1098년 5월 말 모술의 영주 케르부가가 야기 시얀의 요청으로 대군을 이끌고 안티오키아로 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십자군에게는 큰 위협이었고, 어떻게든 케르부가의 대군이 도착하기 전에 안티오키아를 함락시켜야만 했다. 보에몽은 야기 시얀에게 증오를 품고 있던 안티오키아의 한 수비대장을 매수했다. 수비대장은 성문을 열어주기로 했다. 약속한 시간에 성문이 열리자 십자군은 순식간에 시내로 들이닥쳤다. 굶주린 병사들에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십자군은 무슬림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까지 모조리 죽였다.

 

 

그림 속으로

 

도레의 작품 속에는 안티오키아 성벽에 매달려 절규하는 무슬림과 그리스도인, 아기를 안은 여성 등이 있다. 날카로운 창끝은 힘없는 그들을 겨누고, 무장한 병사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시민들을 살육하고 있다. 건물은 과거 비잔틴 제국의 영광을 대변하듯, 이런 처절한 상황 속에서도 아름답고 장엄하다. 이토록 아름다운 건물에서 믿기지 않는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안티오키아 공방전은 이후 유럽에 전해져 전설이 되었고, 여러 무훈시의 소재가 되었다. 12세기에 널리 불리던 ‘안티오키아의 노래’(chanson d’Antioche)도 그중 하나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9월 27일, 김혜경(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 그림 파일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것입니다.

원본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1/18/Gustave_dore_crusades_the_massacre_of_antioch.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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