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25) 조토의 ‘희년을 선포하는 보니파시오 8세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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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25) 조토의 ‘희년을 선포하는 보니파시오 8세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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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25) 조토의 ‘희년을 선포하는 보니파시오 8세 교황’


새로운 시대 ‘100년 전대사’ 은총을 주는 희년을 선포하다

 

 

조토, ‘희년을 선포하는 보니파시오 8세 교황’, 라테란의 요한 대성전, 이탈리아 로마.

 

 

두 차례에 걸쳐서 보니파시오 8세 교황(재위 1294~1303)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파란만장했던 1200년대를 보내며 교황들의 세속 권력이 막을 내리고 국가주의가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첫 번째 희년을 선포하는 한편,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이전하는 근거를 만든 교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는 ‘첫 번째 희년을 선포하는 보니파시오 8세 교황’를 다루고, 다음 호에는 ‘아나니의 굴욕, 보니파시오 8세 교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교회의 세속 권력의 쇠락

 

제4차 십자군 전쟁으로 콘스탄티노플 점령(1204년)에서 시작하여 아크레 공방전(1291년)을 마지막으로 전쟁의 한 세기가 막을 내리고 있었다. 1200년대 교회는 참으로 힘든 세기를 보냈다. 동시에 1200년대 말, 성 첼레스티노 5세(재위 1294년 7월~1294년 12월)와 보니파시오 8세를 마지막으로 교황의 세속 권력은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로, 또 십자군 전쟁의 실패 여파에 따라 크게 힘을 잃었고 스페인과 프랑스, 독일 신성로마제국을 중심으로 국가주의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탁발 수도회들의 탄생으로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기도 했다.

 

1299년, 힘든 한 세기를 보내며 백성들은 다가올 100년은 다른 세상이기를 기대하며 로마로 순례 행렬을 이어갔다. 이제는 갈 수 없게 된 팔레스타인 성지를 대신한 순례 행렬이기도 했다. 새로운 세기에 대한 소망에서 비롯된 ‘자발적인 백성 운동’이었다. 이런 백성의 움직임에 힘입어, 또 1200년대를 열었던 인노첸시오 3세 교황(재위 1198~1216)의 ‘100년 전대사’를 토대로, 1300년 2월 22일 보니파시오 8세 교황은 ‘희년(성년)’을 제정, 선포했다. 전대사는 1299년 12월 24일부터 수여된다고 했다.

 

희년을 선포하는 칙서 「옛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Antiquorum Habet Fida Relati)」을 통해 보편적 성격이 부여되고, 로마에 있는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의 무덤 순례가 권장되었다. 교황은 칙서에서 “나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자비와 그분 사도들의 공로와 권위를 믿으며, 내 동료 형제들의 의견을 듣고 사도로서 충만한 권한으로… 올해와 다가올 100년마다 경건하게 이 대성전들을 방문하고, 진실로 참회하며, 고해성사에 참여한…모든 이에게 그들이 범한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며, (교회와 성인들의 공로에 힘입어) 지극히 충만하게 용서를 베풀고 또 베푼다”고 천명했다. 칙서는 첫 번째 희년을 ‘100년에 주는 전대사(Anno Centesimo d’indulgenza)’라고 칭했고, 앞으로도 100년마다 선포될 것이라고 했다. ‘100년마다’의 전통은 이후 50년, 25년으로 바뀌고, 중간중간 ‘특별 희년’까지 더해졌다.

 

 

1300년 희년 선포

 

교황의 희년 선포는 백성들 안에서 크게 환영받았고, 국제 무역을 하던 상인이자 역사가였던 빌라니(1280~1348)는 30만 명 이상의 순례자가 희년 행사에 참여했다고 기록했다. 순례자 중 한 사람으로 알리기에레 단테도 있었는데, 그는 「신곡」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하기도 했다. “성년에 군중이 너무 많아, 로마 사람들이 그들을 다리 위로, 지나가도록 배려했기에, 한쪽에는 모두가 이마를 성(城) 쪽으로 돌려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가고, 다른 쪽에는 산(예전에 있었던 몬테 조르다노로 지금은 사라짐) 쪽으로 가는 것(처럼 강을 건너갔다)과 같았다.”(지옥편, 18곡, 28-33)

 

로마 동쪽에서 성 베드로 대성전이 있는 서쪽으로 가려면 테베레 강을 건너야 했는데, 다리는 유일하게 천사의 성으로 이어지는 다리밖에 없었다. 옆에 있는 다른 오래된 다리 중 하나인 ‘식스토 다리’만 해도 1400년대 말 식스토 4세 교황에 의해 세워졌다. 따라서 천사의 성 다리는 많은 군중이 운집했고, 흐름을 원활하게 하려고 다리의 절반을 갈라서 일방동행으로 만들어 이동했다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일방통행’으로 짐작된다.

 

 

르네상스를 앞당긴 화가, 조토

 

소개하는 그림은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5~1337)가 그린 벽화 ‘희년을 선포하는 보니파시오 8세 교황’이다. 로마교구 주교좌 라테란의 요한 대성전에 있다. 예전에 있던 성당 벽화 중에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의 기록이라 보존해 온 것이다. 이곳은 1300년, 희년을 선포하던 당시 사도좌 성당이기도 했다. 그래서 ‘100년 전대사’인 첫 번째 희년은 여기서 선포되었다.

 

조토는 피렌체 북쪽 시골 마을 무젤로에서 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찌감치 양치기 소년이 되어 매일 양 떼를 몰고 들판에서 살았기에 그의 예술적 모델은 자연이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사람은 치마부에였다. 치마부에 역시 탁월한 예술가지만, 조토는 곧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가 되었다. 조토는 중세 미술에서 흔히 보듯 모델을 추상적 혹은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실재하는 현실의 인간을 모델로 한 첫 번째 화가였다. 신 앞에서 인간의 나약함과 추함이 가려지고 거룩하고 고상한 것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나약함과 추함은 물론 춥고 슬프고 아픈 감정까지 가감 없이 표현함으로써 르네상스를 앞당긴 화가로 평가되고 있다. 중세 미술에 (인간의) 혼을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조토와 같은 시대를 살며, 조토가 시각 혁명을 일으킬 때, 문자 혁명을 일으킨 단테(1265~1321)는 “치마부에의 시대는 갔다. 이제부터는 조토의 시대다”고 했다.

 

 

짧지만 행복한 평화의 찰나

 

야코포 가에타노 스테파네스키(1270~1343) 추기경은 「100년 희년을 기록한 책」에서 성 베드로의 무덤으로 들어가는 끝없는 인파를 보며, “그날 신자들은 모든 죄 사함을 받고, 100년 전대사를 받을 거라고 확신했다”고 적었다. 107세의 한 순례자는 보니파시오 8세 교황을 알현한 자리에서 1200년 1월 1일, 부친과 함께 인노첸시오 3세 교황으로부터 ‘100년 전대사’를 받았을 때, 자신은 7살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엄청난 인파가 로마로 몰려왔다는 것은 ‘영원한 도시’로서 로마의 품격을 의미했고, 교황의 우선적(Primario)이고 특수(Privilege)한 권위를 공고히 하는 것을 뜻했다. 더불어, 그만큼 기부금도 도달했다는 것을 암시했다. 역사가들은 교황에게 그 순간은 “짧지만, 행복한 평화의 찰나”였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교황청 재정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보니파시오 8세는 교황의 세속 권력이 크게 상실하고 국가주의가 고개를 들자 제후들로부터 받던 분담금이 단절되는 것을 두려워했고, 경제적인 이유로 희년을 제정했다고도 했다.

 

그러나 역사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작 교황은 제후들의 큰 선물(?)은 받지 못했다. 그 점에 대해 보니파시오 8세 교황은 크게 실망했다. 많은 제후가 희년 행사에 불참했고, 참여한 제후들도 이제는 영지를 헌납하는 일은 없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보니파시오 8세가 꿈꾸었던 교회 권력과 세속 권력의 통합, 곧 신권정치(神權政治, theocracy)가 이미 지나간 과거의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림 속으로

 

교황은 그림 속에서 조토가 묘사한 것처럼, 라테란의 요한 대성전 광장에 모인 순례자들 앞에서 칙서를 읽었다. 그림 자체는 매우 단순하다. 문자로 기록하는 대신 붓으로 기록한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벽화를 그린 화가 조토는 서양 미술의 역사를 새로 쓴 사람이다. 최초의 인문주의 예술가로 손꼽기도 한다.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2층에 프란치스코 성인의 일대기를 그린 화가로도 유명하다. 이 작고 단순한 그림 속에서도 그의 인문주의적인 면을 엿볼 수 있는데, 교황이 아주 높은 연단에 올라 권위를 풍기며 칙령을 읽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눈높이와 별로 다를 바 없는 높이에서 칙령을 읽고 있는 점이다. 오른쪽 기둥 뒤에 있는 인물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교황의 양쪽에서 복사를 서고 있는 사람은 좌측의 나이 든 사람과 우측의 젊은 사람을 넣어 대희년의 은사가 모든 세대를 아우른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1월 22일, 김혜경(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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