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31) 베노초 고촐리의 ‘동방 박사들의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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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31) 베노초 고촐리의 ‘동방 박사들의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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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31) 베노초 고촐리의 ‘동방 박사들의 행렬’


비잔틴 학자와 저명 인사들의 화려한 방문, 르네상스를 견인하다

 

 

베노초 고촐리, ‘동방 박사들의 행렬’(1459~1460),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 내 메디치 경당, 이탈리아 피렌체.

 

 

교황청의 아비뇽 체류와 서구 교회의 분열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소집된 콘스탄츠 공의회 결과는 얀 후스를 단죄하고, 마르티노 5세(재위 1417~1431)를 새 교황으로 선출하는 것으로 그간의 문제들이 해결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비잔틴 쪽에서 오스만 제국이 성장하자 비잔틴 제국과 교회가 동시에 위기에 몰렸고, 서방 교회에서는 후스의 추종자들이 공의회 우위설과 교황 수위권을 공격하며 기승을 부렸다.

 

 

‘바젤-페라라-피렌체 공의회’가 열리기까지

 

마르티노 5세 교황은 비잔틴 교회의 위기를 계기로 동ㆍ서방 교회의 화해를 모색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교회 내부적인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1431년 스위스 바젤에서 공의회를 소집했다. 그러나 공의회를 열기도 전에 교황이 사망하고 공의회는 의제만 내놓은 채 무산되고 말았다.

 

후임 에우제니오 4세(재임 1431~1447) 교황은 1438년 1월 자리를 이탈리아 페라라로 옮겨 공의회를 소집했고, 비잔틴 제국의 대사와 교회 수장들을 불러들였다. 하지만 페스트가 포(Po)강 유역을 덮쳐 페라라 공의회는 다시 위기에 몰렸다. 또 밀라노의 비스콘티 군대가 에밀리아의 교황령을 정복했으며, 그리스 정교회 대표를 맞이할 만한 교황청 재정이 넉넉하지 않았다. 이에 피렌체 공국의 코시모 데 메디치(‘코시모 국부’로 알려짐)가 에우제니오 4세 교황의 특사로 페라라에 파견되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공의회에 참가한 교부들과 손님들을 환대했다.

 

코시모 국부는 1434년 1년간 피렌체의 기득권에 밀려 쫓겨났다가 돌아온 이후, 피렌체의 시민사회에서 정치적 영향력이 뚜렷해지던 상황이었다. 그는 교황에게 피렌체로 자리를 옮겨 공의회를 이어갈 것을 제안했고, 1439년 1월 10일 에우제니오 4세 교황은 페라라 공의회 회기를 닫고, 피렌체 이전을 결정했다.

 

이런 배경에는 3년 전인 1436년 에우제니오 4세 교황을 초대하여 피렌체 두오모 축성식을 한 것이 있었다. 필립보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하고 메디치 가문에서 전적으로 후원하여 거의 100년간 지붕이 뚫린 채 있던 대성당의 지붕을 얹었다. 오랫동안 피렌체의 수치였고, 피렌체 시민들의 숙원이 완성된 기쁨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 에우제니오 4세 교황을 초대하여 성대하게 축성식을 했다. 더 앞서는 대립교황이었던 피사 공의회 출신 계열의 요한 23세 때부터 메디치은행이 교황청 주거래 은행이 되면서 나름대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도 작용하였다. 더욱이 코시모 국부가 교회 몫의 비용을 모두 떠안겠다고 했다. 그것이 ‘바젤-페라라-피렌체’ 공의회가 된 이유다.

 

 

르네상스 문화 ‘만끽’

 

1439년 1월 27일 교황이 피렌체에 도착한 날, 피렌체는 축제를 선포하고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크게 환영했다. 정교회의 요세프 2세 총대주교는 2월 11일에 도착했고, 비잔틴 제국의 요안니스 8세 팔레올로고스 황제는 2월 15일에 도착했다. 황제의 입성은 커다란 구경거리였다. 피렌체 공화국 총리 레오나르도 브루니는 비잔틴 제국의 최고의 인사들을 맞아 유창한 그리스어로 그들을 영접했다. 정교회의 대표들은 피렌체 공화국의 유력한 가문들에서 제공한 궁에서 묵으며 이제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르네상스 문화를 만끽했다.

 

공의회는 2월 26일 산타 마리아 노벨라 대성당에서 개최되었고, 그해 6월 정교회 총대주교 요세프 2세가 갑자기 사망하자 산타 마리아 노벨라 대성당에 무덤을 마련해 주었다. 피렌체는 가진 모든 인력을 동원했다. 인문주의 학자들 사이에는 훗날 니콜라오 5세 교황이 되는 파렌투첼리도 있었다. 내로라하는 문인들과 브루넬레스키, 도나텔로, 기베르티 등 예술가와 건축가도 있었다. 스콰르차루피와 같은 음악가와 코스카넬리와 같은 수학-천문학자도 있었다. 레오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교황청 서기관으로 에우제니오 4세 교황과 함께 참가했다. 비잔틴 학자들은 피렌체 도서관에 기증할 수백 권의 그리스어 사본을 가져왔다.

 

그리스 과학과 사상은 피렌체 인문주의 세계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고, 정교회 총대주교와 황제를 동행한 성대한 행렬은 대단히 이국적이었다. 특이한 용모와 장식, 의복, 관습과 의식은 그 자체로 호기심과 놀라움으로 예술가와 작가들의 상상력에 강한 자취를 남겼다. 피렌체는 ‘동방 박사들의 방문’을 실제로 사는 것 같았다.

 

그해 7월 6일, 꽃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두오모)에서는 체사리니 추기경과 베사리오네 추기경이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두 교회의 재결합을 장엄하게 선포했다. 11월 22일에는 아르메니아인들과의 일치가 선포되었고, 공의회 폐막 이후에도 계속된 노력으로 1441년에는 이집트 콥트 교회와 일치도 승인되었다. 그러나 이런 양측 교회 간의 노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비잔틴 백성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다시 분열 상태로 되돌아갔고, 1453년 콘스탄티노플은 마흐메트 2세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학문적, 문화적 성과

 

공의회는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측면은 실패로 끝났지만, 학문과 문화적인 측면은 르네상스를 견인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우선 서방 교회 내부에서 인재를 재발견하는 기회가 되었다. 성직자들 가운데 그리스어에 능통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과 그들을 통한 그리스-로마의 고전 연구는 인문주의가 중세기 ‘신에게서 벗어나 인간’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모상으로서 인간’을 인식하는 것으로 자리를 잡았다.

 

비잔틴 학자들의 방문과 그들이 가져왔던 책의 사본들은 고대 그리스 문화를 발견하고 배울 기회가 되었고, 피렌체 철학자들은 플라톤 사상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한 논문에서 고대 그리스의 미(美)에 대한 독창성과 범접할 수 없는 특성을 강조했고, 시각예술에서 그리스 모델은 기베르티, 도나텔로, 루카 델라 로비아, 안젤리코와 도메니코 베네치아노의 작품에서 확연히 드러나듯, 더 부드럽고 밝고 우아하고 세련된 방식을 선사했다.

 

그들은 예술로 1439년 피렌체 공의회를 기억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기베르티는 피렌체 세례당의 천국의 문에서 ‘시바의 여왕과 솔로몬의 만남’으로 표현했고, 파올로 우첼로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대성당의 안뜰에 ‘노아의 대홍수’로,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대성당의 정면’ 설계로, 아폴로니오 디 조반니는 메디치-라우렌치아나 도서관에 소장된 베르길리우스의 작품 속에 넣은 삽화들을 통해서, 그리고 베노초 고촐리는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 내 경당에 그린 프레스코화 ‘박사들의 행렬’로 표현했다.

 

 

르네상스 화가로 쏜꼽혀

 

소개하는 작품은 베노초 고촐리(Benozzo Gozzoli, 1421?~1497)의 ‘동방 박사들의 행렬’(1459~1460)이다. 고촐리는 피렌체 출신의 대표적인 르네상스 화가로 손꼽힌다. 로렌조 기베르티, 베아토 안젤리코의 제자로 두 사람 사이를 오가며, 그들의 작업에 여러 차례 참여했고, 그 과정에서 나름의 양식을 발전시킨 인물이다. 크게 부각할 것 없는 그의 생애보다도 유명한 것이 소개하는 바로 이 작품이다.

 

 

그림 속으로

 

작품이 그려진 경당은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 2층에 1446~1449년 미켈로초가 설계한 것으로, 1442년 에우제니오 4세 교황이 처음 개인 건물에 경당을 짓는 것을 허락해 주어 지은 것이다. 이 경당의 양쪽 벽에 고촐리는 ‘동방 박사들의 행렬’을 그렸다.

 

그림은 야고보 다 바라지네가 쓴 「황금전설」을 근거로 했다. 「황금전설」은 동방박사들의 이름을 처음 언급한 책이다. 고촐리는 그것을 토대로 카스팔(C), 멜키올(M), 발타살(B)라고 인용했고, 행렬 속에는 동방교회의 요세프 2세 총대주교와 비잔틴 제국의 요안니스 8세 팔레올로고스 황제도 등장한다. 무엇보다도 메디치 가문의 식구들과 당시 피렌체의 많은 학자 및 저명한 인물들이 총출동한다.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작품이자, 피렌체 공의회가 르네상스의 전환점이자 기폭제가 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후 플라톤 아카데미의 설치와 1453년 비잔틴 제국이 멸망할 때 추방된 학자들을 피렌체가 앞장서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월 10일, 김혜경(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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