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34) 핀투리키오의 ‘만토바 공의회를 소집하는 비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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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34) 핀투리키오의 ‘만토바 공의회를 소집하는 비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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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34) 핀투리키오의 ‘만토바 공의회를 소집하는 비오 2세’


비잔틴 회복 위해 소집됐으나 이름뿐인 공의회에 그쳐

 

 

핀투리키오, ‘만토바 공의회를 소집하는 비오 2세’(1502~1507), 피콜로미니 도서관, 시에나 대성당.

 

 

비잔틴 제국의 퇴장

 

1453년 콘스탄티노플은 오스만 제국의 술탄 마호메트 2세에게 함락되고, 서방은 비잔틴 제국과 교회를 영원히 잃었다. 당시 교황이었던 니콜라오 5세(재위 1447~1455)는 유럽의 그리스도교 제후 국가 간의 싸움을 멈출 것을 호소하는 한편, 공동의 적인 오스만 제국에 의한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큰 성과 없이 역사의 흐름은 비잔틴 제국의 퇴장으로 막을 내렸다.

 

훗날 르네상스를 주도한 로렌조 마니피코 데 메디치의 그리스어 스승 아우리스파처럼, 이탈리아인 학자가 동방으로 유학 가서 공부할 필요는 이제 없어졌다. 동로마 제국의 붕괴로 서방으로 망명한 비잔틴 학자들로 인해 다양한 문화가 융성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철학자와 신학자, 과학자, 정치가, 문법가, 시인, 인쇄업자, 음악가, 건축가 등이 대거 망명해 대학과 개인에게 그리스어로 된 지식을 전수했고,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파도바, 밀라노 등 이탈리아 도시들은 그리스인 학자들로 넘쳐났다. 이 도시들을 교두보로 시칠리아의 메시나 대학과 파리 대학으로 진출하기도 했고, 스페인과 러시아로 르네상스를 퍼다 나르기도 했다.

 

 

망명한 학자들과 꽃피운 학문

 

저명한 학자들과 함께 전수된 그리스어 텍스트의 풍부한 지식은 인쇄술의 발명으로 유럽 전역에 퍼졌다. 1500년을 전후로 베네치아에는 약 5000명의 비잔틴 공동체가 있었는데, 이것은 유럽 대도시 중 피렌체 다음으로 큰 규모였다. 당시 베네치아 공화국은 크레타와 달마티아를 지배하고 있었고, 비잔틴 제국이 붕괴하자 많은 학자가 그곳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크레타 섬을 비롯한 베네치아 공화국의 식민지 영토들은 중요한 비잔틴 문화의 요람이 되었다.

 

니콜라오 5세 교황은 비잔틴 제국의 몰락을 그리스도교 세계와 그리스 학문의 참사라고 했고, 훗날 비오 2세 교황이 되는 에네아 실비오 피콜로미니는 이 참사는 “호메로스와 플라톤을 두 번 죽인 일”이라고 했다.

 

니콜라오 5세 교황은 비잔틴 제국의 위험을 일찌감치 감지하고 있었고, 1450년 성년을 지내면서 교황청 재정이 나아지기가 무섭게 르네상스 정신을 불어넣는 일을 시작했다. 예컨대 그리스인 게오르그에게 명하여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1450년)를 그리스어 원문에서 직접 번역하도록 했는데, 이것은 아랍어 번역본을 거치지 않은 최초의 번역이었다. 이후 상당한 양의 코덱스(codex)를 수집하기도 했는데, 1455년 그가 사망할 즈음에는 1200개가 넘는 고전 작가들의 코덱스를 수집할 정도였다. 이것은 미래 바티칸 도서관의 원천이 되었고, 교황청 상서국(尙書局, Cancellaria)을 설립하는 근거가 됐다. 상서국은 후에 인문주의 학자들에게 위탁해 교황을 도와 교회 행정 관련 칙령과 각종 문서를 작성하는 기관으로 발전했다.

 

니콜라오 5세 교황은 인문주의자로 깊은 학식을 갖춘 사람이었고, 학문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의 친구 피콜로미니 추기경은 그를 두고 “사람이 알아야 하는 건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재임 기간 ‘니콜리노 계획’으로 로마 도시를 재편하기도 했다. 성벽을 강화하고, 로마 시대 상수도를 복원하며, 동네를 재배치하고, 로마 시내 40여 개 성당을 복원 또는 재건하며, 성 베드로 대성전을 확장했다. 바티칸 사도궁도 개축했다. 그때 베아토 안젤리코(1387~1455)를 불러 니콜리나 소성당을 장식하도록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비잔틴 제국 멸망의 아픔만 안고, 이후 수많은 서적을 갖고 이탈리아로 오기 시작한 그리스 학자들로 인한 결실은 보지 못하고 콘스탄티노플 함락 2년 후에 숨을 거두었다.

 

 

비오 2세 교황, 마지막 노력

 

그의 인문학적 노선을 계승한 교황은 1458년에 비오 2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이 되는 시에나 대교구장 에네아 피콜로미니 추기경이었다. 비오 2세 교황은 평신도로 있던 1442년에 신성 로마 제국의 프리드리히 3세 황제로부터 계관 시인의 관을 받을 정도로 문학에 조예가 깊은 인물이었다. 그가 쓴 「두 연인의 이야기(Historia de duobus amantibus)」는 사제 수품 이전에 쓴 것으로, 훗날의 교황이 쓴 유일한 ‘성인 소설’이라는 이유로 지금까지 서양 문학에서 널리 읽히고 있다. 그가 평신도로 있을 때, 경험한 연애를 바탕으로 쓴 것이라고 한다. 비오 2세 교황은 유럽 최초로 근대적인 도시 계획을 수립해 고향 마을 코르시냐노를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개발했고, 도시의 미관을 달리해 자신의 이름을 따서 ‘피엔자(Pienza)’로 개명했다.

 

하지만 비오 2세 교황은 재임 초기부터 콘스탄티노플을 잃은 것을 가장 아까워했다. 그래서 원정대를 보내 오스만 제국에 맞서고자 했으나, 유럽의 상황이 그럴 처지가 전혀 아니었다. 이에 교황은 유럽의 제후들에게 제발 서로 싸우지 말 것을 호소하기 위해, 또 공동의 적에 맞서 연합을 촉구하기 위해 공의회를 소집했는데, 그것이 만토바 공의회(1459년)다. 이탈리아 북부에서 벌어지고 있던 전쟁은 로디 평화협정으로 종식되었지만(1454년), 영국은 장미 전쟁(1455~1485년)을 하고 있었고, 13년 전쟁(1454~1466년)으로 프로이센 도시와 지역의 귀족이 튜턴 기사단과 싸우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공의회에서 거둔 수확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서방 교회가 콘스탄티노플을 향해 기울인 마지막 노력이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프레스코화 세밀화에 탁월한 재능

 

소개하는 그림은 핀투리키오(Pinturicchio)로 알려진 베르나르디노(Bernardino di Betto Betti, 1452~1513)의 ‘만토바 공의회를 소집하는 비오 2세’(재위 1502~1507)다. 시에나 대성당 내 피콜로미니 도서관에 그려진 프레스코 작품 중 하나다. 시에나 출신의 피콜로미니 추기경이 비오 2세 교황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이 도서관의 벽에 그의 업적과 생애를 그렸다. 모두 핀투리키오의 작품이다.

 

핀투리키오는 템페라 프레스코화 세밀화 등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던 페루지노, 젊은 라파엘로와 함께 움브리아 학파 최고 마에스트로 중 한 사람이었다. 장식적인 프레스코 작품을 남긴 대표적인 화가로, 1492~1494년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을 위해 바티칸 궁전의 ‘보르자 아파트(교황의 사저)’에 그린 6개의 방 벽화가 있고, 시에나 대성당의 피콜로미니 도서관에 그린 비오 2세 교황의 생애 10개의 장면(1503~1508년)이 있다. 이 그림들에서 드러나는 뛰어난 공간성과 색채에 대한 세부 묘사는 후에 라파엘로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림 속으로

 

작품으로 들어가 보면, 비오 2세 교황이 공의회를 소집한 동기가 원래 오스만 제국의 서방 진출을 막고, 1453년에 잃은 콘스탄티노플을 회복하자는 것인데, 그런 분위기는 찾아볼 수가 없다. 비오 2세 교황의 이런 논리에 만토바 공국의 루도비코 곤자가(1412~1478)가 동조했고, 1459년 그의 궁정에서 공의회가 소집됐다.

 

오른쪽에 삼중관(티아라)을 쓰고 회의를 주재하는 비오 2세 교황은 창문이 큰 회랑 같은 공간에 있다. 건물의 현관 같기도 한 장소에서, 교황은 계단 위에 앉아 있고, 가운데 보이는 창문 너머로 멀리 움브리아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비오 2세 교황을 중심으로 오른쪽의 검은색 계단 난간 혹은 커튼 너머로 구경꾼들로 보이는 그룹의 사람들과 교황 앞 계단 아래서 카펫이 덮인 책상에 어지럽게 펼쳐진 책과 코덱스 자료들을 둘러싸고 동ㆍ서방 교회의 고위 인사들과 학자들이 진지하게 회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과거의 사람과 현재의 사람으로 구분된다.

 

6개월 남짓 이어진 공의회에서 얻은 소득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만토바 공의회가 역사에서 주목받지 않은 이유다. 그런데도 그림을 통해 비오 2세 교황의 10가지 중요한 업적 중 하나로 소개하는 것은 그림이 담고 있는 원근법, 명암법, 장식 등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이 당시에는 시대 정신이었고, 그것은 ‘집단’으로 묘사되는 구경꾼이 아니라, ‘원자적 개인’으로 묘사되는 능동적인 주체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교황이 그것을 주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공의회는 최초의 르네상스 인문주의 공의회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교회의 르네상스는 잃어버린 콘스탄티노플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월 31일, 김혜경(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 그림 파일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것입니다.

원본 : https://www.wga.hu/art/p/pinturic/siena/08mantu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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