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2) 파스콸레 카티의 ‘트렌토 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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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2) 파스콸레 카티의 ‘트렌토 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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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2) 파스콸레 카티의 ‘트렌토 공의회’


영혼을 돌보는 ‘어머니 교회’의 근본으로 돌아가다

 

 

파스콸레 카티, ‘트렌토 공의회’(1588/1589), 트라스테베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로마.

 

 

종교개혁과 로마 약탈이라는 충격과 함께 시작된 1500년대의 교회는 1534년 파르네세 가문의 알렉산드로가 바오로 3세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앞서 언급했지만(바치초의 ‘성 프란체스코의 죽음’ 편), 바오로 3세는 많은 남녀 수도회 설립을 인가해주고, 영성가들을 교회에서 보호해줌으로써 성인들의 시대를 열기도 했지만, 보편 교회 차원에서 어떤 식으로든 종교개혁가들에게 답변도 해 주어야 했다. 그것이 1545년 12월 13일부터 1563년 12월 4일까지 이탈리아 북부 도시 트렌토 주교좌성당에서 개최한 공의회였다.

 

‘트렌토 공의회’는 3차례 회기를 가졌다. 바오로 3세가 소집하고, 율리오 3세 교황을 거쳐 비오 4세 교황이 18년간의 회의 일정을 폐막했다. 25명의 주교와 5명의 수도회 장상이 시작한 공의회는 255명이 참석한 가운데 막을 내렸다. 안건 내용은 주로 프로테스탄티즘, 가톨릭교회의 쇄신, 성사, 성경, 심판 등이었고, 최종 16개 교령이 선포되었다. 트렌토 공의회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년)까지 약 300년간 가톨릭교회의 노선이 되었다.

 

 

어렵게 열린 공의회

 

교회 쇄신에 대한 목소리는 13~14세기, 보니파시오 8세 교황과 프랑스 필립 왕이 대립할 때부터, 교황청의 아비뇽 이전과 로마 귀환, 서구 교회의 분열 등이 터지던 때부터 나왔던 것이었다. 이에 1512~1517년, 율리오 2세 교황이 소집하고, 레오 10세 교황이 마무리한 제5차 라테란 공의회가 있었으나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이유는 당시 율리오 2세의 자세가 오로지 프랑스 왕 루이 12세를 견제하는 데만 힘을 쏟았을 뿐, 실제 교회 안팎의 문제에는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에 문제는 더욱 커졌고, 결국 종교개혁과 로마 약탈이라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문제는 빨리 해결해야 한다. 시기를 놓치면 더 커져서 그만큼 더 큰 희생을 치르고서야 해결된다.

 

1523년 뉘른베르크 제국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모두 동의하는 공의회를 개최해야 한다며 “독일에서 자유롭게 그리스도교 회의를 여는 것이 합당하다”고 했고, 샤를 5세도 동의했다. 요컨대, 공의회 개최는 기정사실이고, ① ‘자유롭게’, 교황이 아니라 황제의 지휘하에서 ② ‘그리스도인’, 곧 평신도들도 참여한 가운데 ③ 이탈리아보다 안전한 ‘독일 땅’에서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클레멘스 7세 교황은 이런 조항들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교회 일보다는 외교적인 일에 더 관심이 많았다. 뉘른베르크의 제안이 점차 흐려지는 가운데, 합스부르크와 프랑스의 전쟁(1521~1559년)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그로 인해 1520년대 소집하기로 한 공의회는 무산되고 말았다.

 

클레멘스 7세의 뒤를 이은 바오로 3세도 1536년, 1538년에 공의회 개최를 시도했으나 연기되는 사이에 장소만 트렌토로 결정되었다. 독일의 제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이탈리아에서도 가기 쉬운 곳으로 합의를 본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전쟁은 공의회 개최를 지연시켰고, 드디어 1545년 3월 15일에서 또 한차례 미루어 12월 13일에 개최되었다.

 

제1차 회기(1545~1547년)에서 주로 다룬 것은 성경과 전통, 구약과 신약의 법규, 불가타 성경의 확실성, 원죄와 심판, 성사 일반 및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등에 관한 교의적인 문제들과 설교, 주교들의 거주 의무 등이었다.

 

제2차 회기(1551~1552년)는 바오로 3세가 사망하고, 후임인 율리오 3세가 이끌었다. 성체ㆍ참회ㆍ병자성사에 관해 교령이 선포되고, 주교의 감독권, 성직자의 의무 등이 결정되었다. 이 기간에 독일 프로테스탄트 일부 제후들은 연맹을 결성했다. 지금까지 승인된 법령의 폐지, 교황에 대한 충성 서약 철회, 교황에 관한 공의회 우위성 확인을 요구했고 뜻대로 되지 않자 1552년 독일 남부로 군대를 집결하여 트렌토를 위협했다. 공의회 교부들은 즉시 회의를 중단하고 모두 돌아갔고, 샤를 5세도 인스브루크를 버리고 떠났다.

 

제3차 회기(1562~1563년)는 율리오 3세(1555년†), 마르첼로 2세(1555년†), 바오로 4세(1559년†) 교황의 뒤를 이어 밀라노 출신인 가를로 보로메오 추기경의 조카 비오 4세가 교황이 되어 이끌었다. 성체ㆍ신품ㆍ혼인성사, 연옥, 성인 공경, 전대사와 수도회에 관한 내용이 승인됐다. 전례에서 라틴어 사용과 속어 강론이 의무화되며, 주교들의 거주 의무, 사제 양성을 위한 신학교 설립 등도 선포되었다.

 

 

루터와 선 긋고 교회 쇄신의 동력 얻어

 

공의회의 업적은 교의적인 차원과 교도적인 차원으로 구분해서 들여다볼 수 있다. 교의적인 문제에서 공의회는 소집 자체가 루터의 논문에 응답하기 위한 것이어서 독일의 개혁자들이 논쟁으로 삼지 않은 것은 공의회에서 다루지 않았다. 삼위일체, 그리스도 강생과 부활의 신비 등에 대해 다루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종교개혁에서 들고 나왔던 교회의 성사에 관해서는 개별 성사들을 신학적으로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결론 내렸다.

 

또 프로테스탄트의 개인주의를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동시에 법적 제도기도 한 교회의 중재 필요성을 재확인했고, 교회는 계시된 말씀의 수호자며 해석자로서, 교도 임무와 성사들을 통해 그것을 유지하고 누가 위임하든지 간에 객관적 가치와 본질적인 효능은 존재한다고 재천명했다. 교도 임무에 관해서, 공의회는 루터의 주장과 달리 하느님의 은총에 더해 믿음과 행동이 동반된 인간 협력의 필요성을 가르쳤다. 이로써 트렌토의 선언은 루터의 주장과 동떨어진 것으로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그와의 결별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었다.

 

한편, 교회 내부적으로 트렌토 공의회는 신앙생활을 쇄신하는 참된 동력으로 작용했다. 제3차 회기의 개혁 교령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 “영혼들을 돌봄(cura animarum)”이었다. 이것은 교회의 근본적인 사명으로 간주 되었고, 주교와 성직자들은 본성과 행위에서 이를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들의 존재 이유는 복음을 가르치고, 성사를 통해 “영혼을 돌보는 데 있다”라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주교들의 첫 번째 임무로 성직자 양성을 위임했다. 이에 주교들은 신학교 건설에 앞장섰고, 사제 교육이 활발해졌으며, 사제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선교 활동이 이루어졌다.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색감 사용

 

소개하는 작품은 ‘영혼을 돌보는’ 교회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파스콸레 카티(Pasquale Cati, 1550~1620)가 그린 ‘트렌토 공의회의 비유’(1588-1589)다. 로마 트라스테베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내 알템프 소성당(Cappella Altemps)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다.

 

카티는 다르피노(Cavalier d‘ Arpino)로 알려진 체사리(Giuseppe Cesari)의 제자로 마르케 지방 출신이다. 미켈란젤로 스타일의 매너리즘 작가로도 알려졌다. 로마에서 주로 활동하며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색감으로 로마의 후기 매너리스트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이 작품이 있는 로마 트라스테베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과 로마 포르모사의 성 로렌조 성당에 굵직한 작품들을 남기고 1620년 로마에서 생을 마감했다.

 

트렌토 공의회에 대한 평가는 이후 역사의 과정에서 여러 가지로 대두되었다. 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어머니이신 교회’가 가르치고, 기억하고, 묵상하고, 열매 맺도록 한다는 근본 방향을 설정한 것은, 공의회의 최고 성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림 속으로

 

그림은 중간에 벽이 있어 앞, 뒤로 구분해서 볼 수 있다. 뒷부분, 회의에 임하는 고위 성직자들의 자세는 자유로우면서도 매우 진지하다. 왼편 연단에 앉은 추기경들 맨 앞에 흰옷을 입은 비오 4세 데 메디치 교황이 있고, 반대편에는 주교들과 수도회 장상들이 뭔가 열심히 대화에 임하고 있다. 이 양쪽을 가르는 사이로 왼쪽 위에서 엄숙한 공의회장 안으로 성령의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앞부분이다. 교회를 상징하는 듯, 교황의 삼중관을 쓴 여성이 한 손에는 목장(牧杖)을, 한 손으로는 누군가를 저지하는 자세로 종교개혁자를 밟고 있다. 나약하지만 엄격하다. 가슴에 십자가 형태로 두른 영대와 입고 있는 흰옷으로 교회와 교황을 대변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녀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여성은 지역 교회와 학문을 상징한다. 그녀의 그늘에서 로물루스와 레무스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여성은 ‘로마’이고, 그 뒤로 손을 모으고 있는 여성, 성합이나 십자가를 든 여성은 ‘지역 교회’를, 그 옆에 바닥에 펼쳐진 책과 지구본은 인문과학을 포함한 각종 ‘학문’을 상징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5월 23일, 김혜경 세레나(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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