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4) 루카 조르다노의 ‘성 카를로 보로메오와 성 필립보 네리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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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4) 루카 조르다노의 ‘성 카를로 보로메오와 성 필립보 네리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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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4) 루카 조르다노의 ‘성 카를로 보로메오와 성 필립보 네리의 만남’


16세기 교회 재건과 개혁 이끌며 고군분투한 두 성인

 

 

루카 조르다노, ‘성 카를로 보로메오와 성 필립보 네리의 만남’(1704년), 지롤라미니 성당, 나폴리, 이탈리아.

 

 

1527년 로마 약탈은 목자가 정신줄을 놓으면 양 떼는 늑대들의 공격을 받는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종교개혁자들은 달리 말하겠지만, 처참한 상황을 겪은 로마 처지에서는 그렇게밖에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바오로 3세 교황(재임 1534~1549)의 등장과 트렌토(트리엔트) 공의회 개최, 뒤이은 율리오 3세, 바오로 4세, 비오 4세 교황을 거치면서 교회의 본격적인 개혁이 진행되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트렌토 공의회는 가톨릭 신앙과 교회의 규율에서 다른 어떤 공의회보다도 폭넓고 깊은, 우리 시대에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공의회였다. 물론 그리스도교 일치를 도모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라틴 국가들에서 교회를 구하는 데는 아슬아슬하게 성공했으나 북유럽은 이미 너무 멀리 나가버렸다.

 

서구 그리스도교는 신앙적으로 심하게 분열되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 교리는 중요한 결정적인 부분에서 명확해졌고 분명해졌다. 칙령들을 시행하는 데 있어 개별 국가에 따라 적용 범위를 달리했어도, 공의회가 “가톨릭교회의 쇄신/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재생적이고 창조적인 힘이 발산된 것은 분명했다.

 

비오 4세 교황은 이런 공의회 개혁의 선봉에 섰고,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개혁자들은 그에게 암살을 시도했다. 겨우 목숨을 건져 로마에 당도한 교황은 그 충격으로 병이 들고 말았다. 참으로 고단하고 힘든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마무리하고, 다시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는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카이며 밀라노의 대주교 카를로 보로메오와 로마의 살아 있는 성자(聖者)로 불리던 필립보 네리가 교황에게로 달려갔다. 두 사람은 교황의 임종을 도왔고, 비오 4세는 두 성인의 품에서 1562년 12월 9일 밤 선종했다. 그의 무덤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로마시 공화국 광장의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 있다.

 

트렌토 공의회는 이렇게 비오 4세의 삶과 함께 마무리되었고, 이제 남은 과제는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교회의 모든 시스템이 가동되었다. 가장 먼저 드러난 것은 성인들이었다. 그중 비오 4세의 임종을 도왔던 카를로 보로메오와 필립보 네리는 이탈리아 교회 쇄신의 주춧돌이었다.

 

 

교회 쇄신의 기틀 마련에 열정 다해

 

먼저, 성 카를로 보로메오(San Carlo Borromeo, 1538~1584)는 1500년대 가장 힘든 시기에 밀라노의 대주교로 있으면서 교구 개혁의 선두에 섰던 분이다. 지금도 밀라노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하는 두 주교를 꼽으라면, 암브로시우스와 보로메오를 들 정도다. 처음 보로메오는 외삼촌인 비오 4세에 의해 1563년 6월 사제품을 받고, 그해 12월 주교로 서품돼 입방아에 올랐으나, 그것을 만회하려는 듯 교회의 영광을 위해 분골쇄신했다. 그는 성직에 입문하기 전에 이미 파비아대학교에서 시민법과 교회법 박사 학위를 취득한 상태였다. 학자의 자질을 인정받아 비오 4세와 후임인 비오 5세의 교황청 고문 요청을 받지만 이를 거절하고, 밀라노대교구로 돌아와 지난 80년간 공석 상태였던 교구를 일으켜 세우고, 자기에게 맡겨진 양 떼를 돌보았다. 교구 행정을 정비하고 교구 시노드를 소집하며, 사목 방문을 정례화했다. 그는 가톨릭교회가 무질서하고 나태해진 것은, 무지하고 게으른 성직자들 때문이라며, 훌륭한 사제 양성을 위해 신학교를 세우고, 수도단체들을 지지했다.

 

보로메오는 종교개혁을 보면서 튼튼한 평신도 학자 양성의 중요성을 인식해 학술협회를 세우고, 모교인 파비아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교에 가문의 유산을 기부, 평신도 학자 양성에 힘썼다. 신자들의 신앙심 고취를 위해 신앙 재교육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한 덕분에 이후, 가장 많은 선교사가 배출돼 세계로 나갔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트렌토 공의회에서 결정한 교회 개혁과 쇄신의 기틀을 마련하고, 공의회에 참여하여 저 유명한 「트리엔트 교리문답」을 초안 감수, 발간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1576년 흑사병이 밀라노를 강타했을 때 귀족들까지 모두 도망간 상태에서도 그는 끝까지 밀라노에 남아 성사를 주고 식량을 나눠 주며, 예방법을 알렸다. 뜨거운 사목자로서 그의 열정은 1584년 11월 3일, “주님, 제가 여기 대령했나이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46세로 선종하는 순간까지 활활 타올랐다. 그의 유해는 밀라노 대성당 중앙 제단 아래에 있고, 1610년 바오로 5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설교와 영적 지혜로 사람들 어루만져

 

성 필립보 네리(San Filippo Neri, 1515~1595)는 약탈(1527년)로 초토화된 로마를 보며, 말보다 행동으로 이웃을 돌보고, 무너진 로마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피렌체의 유명한 네리(Neri) 가문 출신으로 친모가 5살 때 사망하자, 부친이 알렉산드라라는 여성과 재혼했는데 그녀의 깊은 사랑 덕분에 필립보는 구김살 없이 사랑 많고 친절하고 명랑한 ‘착한 피포(Pippo)’로 자랐다. 피렌체에 있던 어린 시절에는 부친과 산마르코의 도미니코수도회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1533년, 학업을 위해 로마로 가서 피렌체 출신 지인의 도움으로 그의 집에서 가정교사로 있으며, 로마대학과 성 아우구스티노회 콜레지움에서 철학과 신학을 마쳤다. 이후 거리와 시장에서 설교하기 시작했다. 그의 설교는 숱한 참사를 겪으며 신앙생활을 등한시했던 로마인들에게 신성한 감동을 주었다. 1548년에 그는 자신의 고해사제 페르시아노 로싸 신부와 함께 ‘삼위일체의 형제회’를 설립해, 로마로 순례 오는 순례자를 맞이하고 순례 영성을 고취했다. 1551년 로마 백성의 요구에 따라 36살의 늦은 나이로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신자들을 ‘오라토리오(Oratorio)’라고 하는 작은 방에 모아놓고, 영적 권고와 고해성사를 주었고, 훗날 그가 설립하는 ‘오라토리오회’의 근거가 되었다. 1564년 5명의 제자가 사제품을 받으면서 기도 모임으로 시작한 오라토리오회는 1575년에 공식 승인을 받았다. 그레고리오 13세 교황은 그에게 발리첼라(Vallicella)의 산타 마리아 성당을 주었고, ‘키에사 누오바(Chiesa Nuova, ‘새 성당’이라는 뜻)’로 단장하여 오라토리오회 본원으로 삼았다.

 

그의 뛰어난 영적 지혜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혜안으로 부자와 가난한 자, 권력자와 힘없는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영적, 물적으로 도와주었다. 누군가는 그를 ‘신비가’로 알고 있을 만큼 깊이 있는 기도와 영적 체험을 한 성인으로도 유명하다. 로마에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교황과 추기경은 물론 권력자들과 일반 시민들의 깊은 존경을 받았다. 하느님을 향한 타는 영적 목마름과 백성을 향한 측은지심은 자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고해성사와 십자가를 들 만큼 뜨거웠다. 1595년 5월 25일 79세로 선종했다. 무덤은 키에사 누오바에 있다. 1622년 그레고리오 15세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나폴리의 거장

 

소개하는 작품은 트렌토 공의회 정신을 삶으로 살아낸 두 성인이 만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나폴리 출신의 루카 조르다노(Luca Giordano, 1634~1705)가 그렸다. ‘성 카를로 보로메오와 성 필립보 네리의 만남’(1704년)이라는 이 작품은 현재 나폴리 지롤라미니 성당 내, 성 카를로와 필립보 소성당의 제단화다. 같은 장소에 같은 작가가 그린 ‘카를로와 필립보의 기도’, ‘카를로가 필립보 앞에 무릎을 꿇음’도 있다.

 

루카 조르다노에 대해서는 앞서, 이 코너를 시작하는 첫 작품 ‘세네카의 죽음’을 소개하면서, 그것을 그린 작가로 간략히 소개한 적이 있다. 이 작품은 1703년 조르다노가 사망하기 2년 전에 지롤라미니 오라토리오회 사제단에서 노(老) 거장에게 주문했다. 사제단은 이후 “나폴리에서 루카 경에 버금가는 붓놀림은 볼 수 없을 것”이라며, 거장의 수작 중 하나로 꼽았다.

 

 

그림 속으로

 

작품의 배경은 교황궁이 아니라, 로마 발리첼라의 산타 마리아 성당 공사장이다. 그러니까 비오 4세가 임종할 당시에 만난 것이 아니라, 이후에 만난 것이다. 비오 4세가 선종한 후 비오 5세를 거쳐 그레고리오 13세가 산타 마리아 성당을 필립보의 오라토리오회에 주었고, 그 후 ‘키에사 누오바’로 바꾸는 공사를 했으니까 시간적으로도 한참 후가 된다. 카를로가 다시 로마를 찾았을 때, 필립보가 있는 키에사 누오바 성당 공사가 한창인 곳으로 온 것이다. 그것도 성당 건축에 보태라며 은색 접시에 금화를 수북이 담아서 가지고 왔다. 참 반가운 일이다. 색의 혼합과 구성과 음영 처리가 탁월하다는 평을 받은 작품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6월 13일, 김혜경(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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