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8) 자코모 조볼리의 ‘성 빈센트 드 폴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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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8) 자코모 조볼리의 ‘성 빈센트 드 폴의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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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8) 자코모 조볼리의 ‘성 빈센트 드 폴의 설교’


사랑의 혁명가, 소외된 이들에게 십자가의 빛을 비추다

 

 

자코모 조볼리, ‘성 빈센트 드 폴의 설교’(1737), 룬가라의 코르시니 궁(Palazzo Corsini alla Lungara), 이탈리아 로마.

 

 

트렌트 공의회로 시작된 가톨릭교회의 개혁은 1600~1800년대를 규정하는 교회의 얼굴이 됐다. 교회가 ‘복음으로 돌아가는’ 새로운 방식으로서 자선, 곧 애덕 활동이 제시됐다. 그것은 필립보 네리와 카를로 보로메오, 성 가밀로, 페데리코 보로메오에 이어 또 다른 큰 성인으로 이어졌다. 오늘 소개하는 빈센트 드 폴(Vincent de Paul, 1581~1660) 성인이다.

 

그 시기, 유럽에서는 로마 가톨릭교회를 지지하는 국가들과 개신교를 지지하는 국가들 사이에서 가장 잔혹한 전쟁이 있었다. 30년 전쟁(1618~1648)으로 알려진 이 ‘종교 전쟁’은 가톨릭과 개신교의 대립인 동시에 전제 군주정과 봉건 제도의 대립이자, 유럽의 여러 국가가 얽히고설키면서 정치적인 구도 속에서 합스부르크 가문과 프랑스의 대결 구도로 양상이 뒤바뀐 복잡한 전쟁이었다.

 

이런 대혼란 속에서 인류는 과학 혁명으로 인식과 지식 분야에서 큰 도약을 예고하고 있었다. 추론과 관용, 판단의 자유를 기반으로 한 계몽주의 과학 혁명은 시민, 경제와 사회 분야에 큰 변화를 가져올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는 교회의 탄압 속에서도 망원경을 직접 개발해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입증했고,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은 만유인력 법칙을 밝혔다. 프랑스의 데카르트와 파스칼, 독일의 케플러와 라이프니츠, 이탈리아의 토리첼리, 영국의 보일과 같은 위대한 학자들도 이 시대를 이끌었다. 과학 혁명과 함께 태어난 합리적 사고는 인간의 행동과 생각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이 시기 여러 분야의 학자들은 이전 세기의 권위주의에 입각한 이성, 자유와 관용에 반대했다.

 

 

17세기, 그리스도 중심적 휴머니즘

 

‘계몽주의’라는 사고(思考) 혁명의 소용돌이를 예상한 듯, 가톨릭교회의 지체들은 행동으로 타자 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시작했다. 애타심으로 타자를 대하고, 평등과 형제애를 실천하며 내세에서가 아니라, 현세에서 지복을 경험할 수 있는 틀을 마련했다. 사랑으로 표현되는 ‘불변하는 사도직’에 투신한 사람들이 세상을 참으로 변혁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줬다.

 

중세기,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과 가족의 영혼 구원에 힘을 썼다면, 1600년대를 기점으로 온 교회 공동체와 더불어 인류의 구원에 힘을 쓰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중세 교회에서 흔히 보던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의 간극은 사라지고,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교회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지리상의 대발견 이후, 공간에 상관없이 가난한 인류를 챙기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1600년대 이후, 교회 안팎에서 드러나기 시작한 교회 쇄신 운동의 특징은 ‘그리스도 중심적 휴머니즘(Umanesimo Cristocentrico)’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앞장서서 실천한 인물 중 한 사람이 빈센트 드 폴 성인이다. 빈센트 성인은 17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영성가 중 한 사람으로 프랑스 가톨릭교회 개혁의 선봉자며 정치사상가기도 했던 피에르 드 베륄(Pierre de Brulle, 1575~1629) 추기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 시기 프랑스 교회를 규정하고, 빈센트 성인을 정의하는 핵심적인 말이 ‘그리스도 중심적 휴머니즘’이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자신과 다른 사람들 안에서 선교 활동의 근본 동력으로 구현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중세기 탁발수도회들이 부르짖었던 가난하고 힘없는 형제들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려는 움직임이 재소환되기 시작한 것이다.

 

 

빈센트 성인은 누구

 

빈센트 성인은 1581년 피레네 산맥을 등에 업은 프랑스 남부의 푸이(Pouy)에서 가난한 농부의 여섯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많은 식구를 위해 고생하는 부모를 도와 양을 치고, 소와 돼지를 치는 일을 했다. 닥스(Dax)의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문법과 라틴어에 특별한 재능을 보였다. 거기서 사도직과 사제 성소를 발견하고, 수도회 삭발례를 받았다. 16살에 툴루즈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1600년 19살에 사제품을 받았다. 재속 사제로 있다가 ‘거룩한 성체 동반자회’에 들어갔다. 1604년 학업을 마치고, 이듬해 마르세유에서 나르본으로 배를 타고 가던 중 해적들에게 붙잡혀 튀니지에 노예로 팔려 갔다. 그를 노예로 산 주인을 그리스도인으로 회개시키고, 2년 후에 풀려나 프랑스로 돌아왔다. 얼마 후, 앙리 4세의 첫 왕비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Marguerite de Valois, 1553~1615)의 요청으로 왕실 교목 및 자선 담당 사제로 갔으나, 몸이 아파 클리시(Clichy)에서 치료를 받던 중 마음이 세상의 것에서 멀어지기 시작했고,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교리를 가르치는 데서 기쁨을 얻기 시작했다. 그의 영적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 프랑수아 드 살(Francis de Sales, 프란치스코 살레시오)을 만난 것도 이때다.

 

1613년, 곤디(1581~1662) 후작의 요청으로 그의 자녀들을 위한 가정교사가 됐고, 1617년에는 그의 영지인 폴빌(Folleville)에서 일하는 소작인들의 사목자로 고용됐다. 폴빌에서 죽음을 앞둔 한 노인의 총고백을 들으며 가난한 이들의 영적 빈곤을 목격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1625년 농민들의 영적 상태를 개선하고자 농촌 사도직을 전문으로 하는 성직자 단체를 설립했다. 라자리스트라고 부르게 될 첫 번째 선교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라자리스트의 많은 회원이 사제가 되면서 선교의 못자리를 형성했고, 첫 번째 라자리스트가 1648년부터 마다가스카르로 파견되었다. 또 그 시기(1617)에 샤띠용 레 동브(Chtillon-les-Dombes)라는 가난한 마을에서 잠시 본당 신부로 있었는데, 거기서 쫓겨나고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며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돌볼 지속적인 봉사 단체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사랑의 여성 동반자회’(1617)를 설립했다. 이 회는 훗날 파리에서 루이즈 드 마리약(Louise de Marillac, 1591~1660)의 지도하에서 ‘성 빈센트 드 폴의 사랑의 딸회’(1630)가 된다.

 

빈센트의 자선과 약자들을 위한 지원 활동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부자들에게도 상대적인 빈곤과 질병이 있음을 간파한 성인의 활동은 프랑스 왕 루이 13세가 자문관으로 선택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곧 왕궁을 떠나 가난한 사람들 곁으로 갔다. 파리에서 30년 종교 전쟁의 희생자들을 선두에서 도왔고, 거룩한 성체 동반자회 회원으로 프로테스탄트 운동의 중재 요청에도 응했다. 하지만 얀세니즘에는 반대했다. 1660년 80세의 일기로 생을 마칠 때까지, 그는 1600년대 가톨릭교회 사랑의 가장 중요한 혁명가가 되어 사랑의 불꽃을 태웠다.

 

 

당대 최고의 아카데미 회원

 

소개하는 작품은 자코모 조볼리(Giacomo Zoboli, 1681~1767)가 그린 ‘성 빈센트 드 폴의 설교’이다. 이탈리아 북부 모데나 지방 출신인 조볼리는 일찌감치 고향에서 수습기를 마친 후, 스트린가(Francesco Stringa, 1635~1709)와 함께 모데나의 두칼레궁(Palazzo Ducale di Modena) 프레스코화 작업을 했다. 1709년 볼로냐를 거쳐, 1712/1713년 로마로 이주했다. 1718년 교황청 판테온 명인 아카데미 회원이 됐고, 1725년에는 성 루카 국립 아카데미 회원으로 활동했다. 둘 다 최고 명인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당대 최고의 아카데미였다. 클레멘스 12세 교황의 조카, 네리 마리아 코르시니 추기경의 보호 아래서 로마, 피렌체, 브레샤를 오가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1767년 86세를 일기로 로마에서 사망했다.

 

 

그림 속으로

 

이 작품은 1737년, 클레멘스 12세 교황에 의한 빈센트 드 폴의 시성을 기념해 그렸다. 1885년 레오 13세 교황은 빈센트 성인을 모든 애덕 활동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17세기 말부터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빈센트를 그린 화가는 참으로 많았다. 종교 개혁과 종교 전쟁의 안방이 된 유럽에서 17세기 진정한 혁명적 행동가인 그에게 붓으로 헌정한 것이다.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누구나’ 지닌 ‘빈곤’을 통찰한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자극합니다(Charitas Christi urget nos)”라는 말씀을 모토로 17세기 가톨릭교회에 내적 충격을 가했다. 그의 애덕 활동은 설교에서부터 시작했다.

 

작품 속에서도 보듯이, 그가 설교한 곳은 시골 마을이고 농부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사이지만, 와서 듣는 사람은 ‘누구나’였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하나하나 진지하게 살펴보기를 권한다. 어른이건 아이건, 부자건 빈자건, 성한 사람이건 아픈 사람이건, 하느님 사랑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이 그를 향해 있다. 그가 백성들에게 준 것은 오로지 십자가, 그 희망의 빛을 가난한 사람과 죄인들을 향해 비추어 주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8월 8일, 김혜경(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부산가톨릭대 인문학연구소 연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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