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9) 자크 루이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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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9) 자크 루이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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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9) 자크 루이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프랑스 혁명의 폭풍 전야에 그린 로마 영웅사, 신고전주의를 열다

 

 

자크 루이 다비드,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1784년), 유화, 루브르, 파리.

 

 

1700년대에 들어오면서, 유럽은 계몽주의 사상을 근간으로 혁명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아시아의 이슬람, 인도-중국권의 여러 문명을 추월하며 격차를 벌렸고, 르네상스 시대부터 이어오던 절대 왕정이 점차 주저앉기 시작했다. 근대를 완성하는 새로운 물결이 온 유럽을 조용히 휩쓸고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루이 14세에서 정점을 찍었던 부르봉 왕조가 내리막길을 걷더니 루이 16세에 이르러 결국 프랑스 대혁명으로 붕괴하였다. 영국은 하노버 왕조의 조지 1세 이후 입헌군주제가 정착되고, 산업 혁명으로 증기 기관 등 눈부신 기술 혁신이 국력을 신장시켰다. 물론 그 안에서도 새로운 사회 문제가 발생했다. 독일은 이름뿐인 신성 로마 제국 아래서 계속해서 분열을 거듭하다가 북방의 프로이센이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며 프리드리히 대왕의 치세하에서 새로운 성장을 시작하였다. 러시아는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2세 치하에서 아시아의 정체성을 버리고 유럽의 정체성을 거머쥐며 서구화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서 폴란드는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에 의해 세 조각으로 찢겨 지도상에서 사라지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이 시기, 유럽은 전쟁도 잦았다. 스페인은 왕위 쟁탈전을, 오스트리아 역시 왕위 계승 전쟁에 이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와 프로이센이 벌인 ‘7년 전쟁’이 연달아 일어났다. 7년 전쟁은 당사자인 두 나라에 그치지 않았다. 유럽의 거의 모든 열강이 참여하는 유럽 전쟁의 양상을 띠게 되면서, 오스트리아-프랑스-작센-스웨덴-러시아가 동맹을 맺어 프로이센-하노버-영국의 연합에 맞섰다. 그들의 식민지가 있던 아메리카와 인도에까지 퍼지면서, 세계대전 급의 대규모 전쟁으로 바뀌었다. 예컨대 영국이 인도 벵골 지방을 침공하려고 하자 그간 영국의 식민지로 있던 무굴 제국이 프랑스의 지지를 받으며, 이를 저지하고 나섰다. 원래부터 앙숙인 영국과 프랑스가 인도에서 부딪친 것이다. 이 둘은 여기서만 부딪친 것이 아니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부딪쳤다. 프렌치-인디언 전쟁이 그것이다. 카리브 해의 섬, 필리핀, 아프리카 해안을 무대로도 부딪쳤다. 결과는 프로이센-하노버-영국 팀이 우세하면서, 세계 정치 무대의 판도를 바꾸었다. 프로이센은 슐레지엔의 영유권을 확보하고,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기초를 닦았다.

 

 

프랑스 혁명과 구체제로 여겨진 가톨릭교회

 

18세기 유럽의 이런 정치 구도 속에서 교회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프랑스의 상황이었다. 게다가 언급한 여러 전쟁이 중요한 것은 미국의 독립 전쟁과 프랑스 혁명에 여러 면에서 원인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프랑스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1701~1714), 미국 독립 전쟁(1775~1783) 등 대혁명 전까지 여섯 차례의 전쟁에 참여했고, 결과적으로 국익에 전혀 보탬이 되지 못했을뿐더러 국가 재정만 낭비한 셈이었다. 루이 14세(재위 1643~1715년) 말년에 시작된 국가 재정의 위기는 이후 더 심각해지고 만성적으로 되어갔고, 그것이 루이 16세까지 이어졌다. 거기에 더해 불평등한 사회 체제에서부터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목걸이 사건에 이르기까지 혁명으로 가는 길은 거듭 확고해지고 있었다.

 

그 길목에서 교회도 ‘앙시앵 레짐(Ancien Rgime, 구체제)’의 하나로 살아남기 힘들었다. 당시 프랑스는 자본가 계급이 부상하고, 계몽주의와 미국 독립 혁명의 여파로 자유 의식이 고취된 상황에서 심각한 경제 불황으로 인구의 절대다수(98%)를 차지하던 평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해 있었다. 1789년 대혁명이 일어나던 해에도 유례없는 흉작으로 농민들의 불안이 가중되어 있었다. 거기에 그간 부와 권력을 누리던 인구의 2%밖에 되지 않던 성직자와 귀족을 제치고 사회의 주도층이 되길 바라던 신흥 부호 세력이 있었다. 의사, 변호사, 사업가 등 전문적인 지식을 통해 부를 축적한 신흥 부르주아 계급으로 계몽주의 사상에 깊이 경도되어 있었다. 노동자, 빈농, 인민으로 분류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도 나름의 동기와 의지로 혁명의 정당성을 부르짖기 시작했다.

 

프랑스 혁명의 과녁은 봉건 왕조를 겨냥하는 동시에, 가톨릭교회를 향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앙시앵 레짐의 상징이 된 가톨릭교회를 습격하고 성상을 파괴했다. 수많은 성직자와 수도자가 희생당하는 것은 물론, 파리와 인근 지역 대성당의 조각상 중에서 구약의 다윗이나 솔로몬처럼 왕관을 쓴 예언자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모두 프랑스의 왕들로 알고 부수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사람 키 높이 정도에 서 있던 대부분 작품도 훼손되었다.

 

오늘 소개하는 작품은 바로 그 혁명을 앞둔, 폭풍 전야에서, 혁명의 정당성을 상징하는 신고전주의의 대표적인 작품이자, 혁명가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 되었던 작품이다.

 

 

근대 회화의 선구자

 

작가는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다. 대혁명이 일어나기 5년 전인 1784년에 그린 회화 작품이다.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작품이고, 근대 회화의 선구자로 만든 작품이다.

 

파리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던 그는 처음에는 로코코 스타일을 따랐으나, 1774년 프랑스에서 건축, 미술, 조각 분야의 뛰어난 학생에게 주는 로마 대상(Prix de Rome)을 받으며, 로마로 유학한 이후 고전적인 엄숙함으로 바뀌었다. 도덕적인 면에서 그 시기 프랑스에 불어닥친 정치 풍조와도 맞았다.

 

로마 유학 이후, 그는 역사화를 주로 그리면서 고전주의를 이끌었고, 근대 프랑스 회화에서 신고전주의의 시조가 되었다. 1780~1789년 그는 앙시앵 레짐의 프랑스에서 혁명의 당위성을 고취하는 그림으로 대혁명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영광의 추락을 의미하는 ‘벨리사리우스의 구걸’(1781),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 등 당시 프랑스에서 예술 작품으로 공화정을 지지하던 독보적인 화가였다. 혁명 시기에는 문화재 보호에 앞장서기도 했다.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 1세의 정치 체제에 협력하며, 나폴레옹의 궁정 화가가 되어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그리기도 했다. 후에 나폴레옹이 실각하자 자신의 아틀리에와 중요한 몇 개의 작품을 친구에게 맡기고, 스웨덴, 로마, 브뤼셀 등으로 망명했으나,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초대에는 거절했다. 1817년 이후 브뤼셀에서 작품 활동을 재개했고, 1824년에는 전시회를 열어 수익금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같은 해에 파리에서도 전시회를 열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듬해(1825) 12월, 잠자듯 조용히 이승을 떠났다.

 

 

그림 속으로

 

그림의 모델은 영국 화가 가빈 해밀톤(Gavin Hamilton)이 그린 ‘브루투스의 맹세’(1781)이다. 이 시기에 주로 그렸던 주제답게 배경은 고대 로마에 전해오는 이야기다.

 

고대 로마의 세 번째 왕 툴루스 호스틸리우스(Tullo Ostilio, 기원전 673~641년)가 통치하던 시절, 로마와 알바 론가가 전쟁을 앞두고 있었다. 양측은 대규모 전쟁보다는 각 진영의 대표를 뽑아 승부를 가리기로 했다. 국가를 대표하여, 국가를 위해, 로마에서는 호라티우스 3형제가, 알바 론가에서는 쿠리아티우스 3형제가 대표로 선발되었다.

 

싸움은 힘겨운 격투 끝에, 쿠리아티우스 3형제는 모두 죽고, 호라티우스 3형제 중 하나가 살아남아 로마에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그림은 고대 로마의 역사가 티투스 리비우스(Titus Livius, 기원전 59~서기 17년)의 「로마사」와 피에르 코르네유(Pierre Corneille, 1606~1684)의 「호라티우스 전설」을 토대로 그렸다. 칼을 들고 있는 아버지 앞에서 호라티우스 3형제가 일렬로 서서 로마식으로 엄숙한 맹세를 하고 있다. 이들 뒤에는 호라티우스가의 여인들이 있다. 이 중 여동생 카밀라는 쿠리아티우스가의 한 남자와 약혼한 상태였고, 약혼자를 잃게 될까 걱정이 된 카밀라가 오빠들에게 항의하자, 큰오빠는 카밀라를 죽였다. 아버지는 나라를 위해 잘한 일이라며 아들을 칭찬했다. 흰옷을 입고 실의에 빠진 여인이 카밀라다. 검은 옷을 입은 며느리는 자식들을 감싸 안고, 가운데 여인은 국가를 위해 희생되는 가문의 이 기막힌 상황에 실신한 듯 의자에 기대 있다.

 

건물은 반원형의 아치와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도리아식 기둥으로 인해 전형적인 로마 양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형제와 아버지의 모습은 엄숙하고 결연하다. 이들의 근육과 행동은 강한 색으로 표현되어 역동적이지만, 여인들은 밝고 연한 색으로 실의에 빠진 심리 상태에 집중했다. 사실적인 감정, 형식의 단순함, 영웅적인 주제를 강조한 점 등이 전형적인 신고전주의 스타일로 간주되어 이후 미술사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8월 15일, 김혜경(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부산가톨릭대 인문학연구소 연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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