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현성당과 둔토리성지(성인 서 루도비코 볼리외 신부 은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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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현성당과 둔토리성지(성인 서 루도비코 볼리외 신부 은신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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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현성당과 둔토리성지(성인 서 루도비코 볼리외 신부 은신처)
 

하우현성당 : 경기 의왕시 원터아랫길 81-6 

둔토리 성지(서 루도비코 신부 은신처)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국사봉 인근

 

하우현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박해를 피해 온 교우들이 모여살았던 교우촌이었습니다.

1893년 하우현공소를 방문한 왕림본당 알릭스 신부는 공소강당없이 교우집에서 공소예절을 행하는것을 보고 교우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공소강당 신축을 건립하기로 하고  알릭스 신부가 제공한 자금과 하우현 교우들이 모금한 자금으로 초가목조 공소강당을 완성하게됩니다. (1894년 6월 2일 축성식)

 

* 성인 서 루도비코 볼리외 신부(한국명 서몰례)

(1840-1866)

 

프랑스 보르도교구의 랑공에서 태어난 성 루도비코 볼리외 신부(한국명 서몰례)는 

1863년 사제품을 받고 2년 뒤 한국 땅을 밟습니다.

서울을 거쳐 뫼논리(현 경기도 성남시 운중동) 교우촌으로 간 볼리외 신부는

장제철의 집에서 조선어를 익혔습니다. 

고해성사를 들을 수 있을정도로 조선말에 능해졌고 1866년 2월 베르뇌 주교로부터 새 임지를 부여받았으나 출발 직전 병인박해가 일어나게 됩니다.

교우들의 안전을 위해 청계산 중턱에 있는 동굴을 찾아가 은신했던 볼리외 신부는 낮에는 조선말을 익히고 밤에는 산을 내려가 교우들을 찾아와서 성사를 주는 등 사목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배교자 이선이와 처음 기거했던 집주인 장제철의 밀고로 붙잡히게 됩니다.

이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드러내며 혹독한 고문을 당한 볼리외 신부는 결국 1866년  3월 7일 베르뇌 주교, 브르트니에르, 도리 신부와 함께 서울 새남터에서  26세의 나이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하십니다.

 

1968년 10월 6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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