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문 베드로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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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남경문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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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 : 회장순교일 : 1846-09-20관련성지 : 포청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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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남경문은 20세 때 교우 처녀 허 바르바라와 혼인하였는데, 큰 병에 걸려 대세를 받고 회복된 뒤 회장이 되었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었다가 배교하여 석방되고 나서는 첩까지 거느리고 3년 동안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다시 교회로 돌아와 김대건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받고 성체를 모신 다음 과거의 죄를 보속하고자 극기하고 인내하는 생활을 하였으며, 교우들에게 순교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1846년 병오박해가 일어나자 임성룡의 밀고로 체포되었다. 체포될 때 남경문은 금위영(禁衛營)의 군인 신분이었으므로 매우 혹독한 형벌과 유혹을 받았으나 모두 이겨 내고 마침내 9월 20일 6명의 교우와 함께 교수형을 받아 51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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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안드레아
관리자 0 0 0 8019 2017.01.16
신분 : 신부순교일 : 1846-09-16관련성지 : 새남터김대건은 1821년 충청도 솔뫼에서 천주교 신자 김제준 이냐시오와 고 우르술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굳센 성격과 진실한 신심을 보고 1836년 나 베드로(모방) 신부는 그를 신학생으로 뽑아 마카오로 유학 보냈다. 그는 6년 동안 신학 공부를 하고 1845년 8월 페레올 주교에게서 사제품을 받아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고국에 돌아온 김 신부는 서울과 용인 지방에서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1846년 음력 4월 주교의 명에 따라, 선교사들의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선교사들의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황해도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 김 신부는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돌아오는 도중 순위도에서 관헌에게 체포되어 서울 좌포도청으로 이송되었다. 취조 중, 김 신부의 넓은 식견과 당당한 태도에 대관들은 그를 죽이기에는 국가적으로도 아깝다고 생각하였으나 후환을 입을 것이라는 영의정 권돈인의 주장대로 결국은 사형을 선고하였다. 김 신부의 처형은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의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김 신부는 망나니들에게 `천주교인이 되어 내가 있을 곳에 오도록 하라.`는 말을 남기고 태연하게 칼을 받았다. 이 때 그의 나이 26세, 그의 목이 떨어지자 형장에는 큰 뇌성과 함께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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