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지 베드로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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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정원지 베드로

관리자 0 5595 0
신분 : 농부순교일 : 1866-12-13관련성지 : 숲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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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로도 불리는 정원지는 충청도 진잠(鎭岑) 교우 집안에서 태어나 전주 부근의 수널마루에서 살다가 금구 지역으로 이사하였고, 1866년에는 전주 성지동 조화서의 집에 셋방을 얻어 노모, 형,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다. 조화서가 체포되던 1866년 12월 5일 정원지는 산에 피신해 있었는데, 동정을 살피러 내려온 사이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전주 감영 전면옥에 갇혔다. 지극한 효성으로 노모를 생각하며 여러 번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함께 체포된 성지동 교우들의 위로와 권면에 힘입어 끝까지 혹형과 고문을 참아 냈다. 마침내 12월 13일 가족에게 “우리는 천국에서 서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제 죽음을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라는 편지를 남기고,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21세의 젊은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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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안드레아
관리자 0 0 0 8024 2017.01.16
신분 : 신부순교일 : 1846-09-16관련성지 : 새남터김대건은 1821년 충청도 솔뫼에서 천주교 신자 김제준 이냐시오와 고 우르술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굳센 성격과 진실한 신심을 보고 1836년 나 베드로(모방) 신부는 그를 신학생으로 뽑아 마카오로 유학 보냈다. 그는 6년 동안 신학 공부를 하고 1845년 8월 페레올 주교에게서 사제품을 받아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고국에 돌아온 김 신부는 서울과 용인 지방에서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1846년 음력 4월 주교의 명에 따라, 선교사들의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선교사들의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황해도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 김 신부는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돌아오는 도중 순위도에서 관헌에게 체포되어 서울 좌포도청으로 이송되었다. 취조 중, 김 신부의 넓은 식견과 당당한 태도에 대관들은 그를 죽이기에는 국가적으로도 아깝다고 생각하였으나 후환을 입을 것이라는 영의정 권돈인의 주장대로 결국은 사형을 선고하였다. 김 신부의 처형은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의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김 신부는 망나니들에게 `천주교인이 되어 내가 있을 곳에 오도록 하라.`는 말을 남기고 태연하게 칼을 받았다. 이 때 그의 나이 26세, 그의 목이 떨어지자 형장에는 큰 뇌성과 함께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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