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률 베드로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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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유정률 베드로

관리자 0 3431 0
신분 : 회장순교일 : 1866-02-17관련성지 :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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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률은 평남 대동군 율리면 답현리(畓峴里, 일명 논재)에서 태어나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짚신을 엮어 팔며 어려운 생활을 하였다.

1864년경 교리를 배우고 서울로 올라와 장 시므온(베르뇌) 주교에게 세례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온 뒤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며 극기하고 인내하는 생활을 하였고, 그의 달라진 모습을 본 아내도 감동하여 입교하게 되었다. 1866년 초 박해가 일어났다는 소문을 들은 유정률은 친척들에게 세배하면서 자신의 순교를 예감한 듯 “안녕히 계십시오. 지금 헤어지면 언제 다시 뵐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인사하였는데, 과연 그 날 저녁 이웃 마을인 고둔리의 공소에서 교우들과 함께 성서를 읽다가 체포되어 평양 감영으로 끌려갔다. 유정률은 이미 체포된 100여 명의 교우와 함께 문초를 받았고, 다른 교우들은 혹형과 고문을 이기지 못하여 배교하였지만 그는 홀로 신앙을 지켰다. 이에 분노한 감사는 배교한 교우 100여 명을 시켜 그를 세 대씩 때리게 하였다. 결국 체포된 다음 날인 2월 17일, 유정률은 300여 대의 매를 맞고 3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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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안드레아
관리자 0 0 0 8024 2017.01.16
신분 : 신부순교일 : 1846-09-16관련성지 : 새남터김대건은 1821년 충청도 솔뫼에서 천주교 신자 김제준 이냐시오와 고 우르술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굳센 성격과 진실한 신심을 보고 1836년 나 베드로(모방) 신부는 그를 신학생으로 뽑아 마카오로 유학 보냈다. 그는 6년 동안 신학 공부를 하고 1845년 8월 페레올 주교에게서 사제품을 받아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고국에 돌아온 김 신부는 서울과 용인 지방에서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1846년 음력 4월 주교의 명에 따라, 선교사들의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선교사들의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황해도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 김 신부는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돌아오는 도중 순위도에서 관헌에게 체포되어 서울 좌포도청으로 이송되었다. 취조 중, 김 신부의 넓은 식견과 당당한 태도에 대관들은 그를 죽이기에는 국가적으로도 아깝다고 생각하였으나 후환을 입을 것이라는 영의정 권돈인의 주장대로 결국은 사형을 선고하였다. 김 신부의 처형은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의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김 신부는 망나니들에게 `천주교인이 되어 내가 있을 곳에 오도록 하라.`는 말을 남기고 태연하게 칼을 받았다. 이 때 그의 나이 26세, 그의 목이 떨어지자 형장에는 큰 뇌성과 함께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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