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병주 베드로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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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홍병주 베드로

관리자 0 3526 0
신분 : 회장순교일 : 1840-01-31관련성지 : 당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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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문 양반가에서 태어난 홍병주는 1801년 신유박해로 할아버지 홍낙민(洪樂敏)이 순교하자 아버지를 따라 충청도 서산으로 이사하여 그 곳에서 자랐다. 조상부터 지켜 온 신앙을 물려받아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였으며, 동생 홍영주(洪永周)와 함께 충청도 내포 지방의 회장이 되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9월말 동생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에서 몇 차례의 고문을 당한 뒤 형조로 이송되었는데, 친척인 형조판서는 인정상 직접 신문하지 않고 하관(下官)에게 모든 수단을 다 써서 홍병주, 영주 형제를 배교시키라고 명령하였다. 이에 홍병주는 가장 지독한 형벌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끝까지 버티어 냈고 결국 1840년 1월 31일 5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참수형을 받아 42세의 나이로 동생보다 하루 먼저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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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안드레아
관리자 0 0 0 8035 2017.01.16
신분 : 신부순교일 : 1846-09-16관련성지 : 새남터김대건은 1821년 충청도 솔뫼에서 천주교 신자 김제준 이냐시오와 고 우르술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굳센 성격과 진실한 신심을 보고 1836년 나 베드로(모방) 신부는 그를 신학생으로 뽑아 마카오로 유학 보냈다. 그는 6년 동안 신학 공부를 하고 1845년 8월 페레올 주교에게서 사제품을 받아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고국에 돌아온 김 신부는 서울과 용인 지방에서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1846년 음력 4월 주교의 명에 따라, 선교사들의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선교사들의 입국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황해도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 김 신부는 편지를 중국 배에 전하고 돌아오는 도중 순위도에서 관헌에게 체포되어 서울 좌포도청으로 이송되었다. 취조 중, 김 신부의 넓은 식견과 당당한 태도에 대관들은 그를 죽이기에는 국가적으로도 아깝다고 생각하였으나 후환을 입을 것이라는 영의정 권돈인의 주장대로 결국은 사형을 선고하였다. 김 신부의 처형은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의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김 신부는 망나니들에게 `천주교인이 되어 내가 있을 곳에 오도록 하라.`는 말을 남기고 태연하게 칼을 받았다. 이 때 그의 나이 26세, 그의 목이 떨어지자 형장에는 큰 뇌성과 함께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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