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문 베드로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홈 > Knowledges > Korean 103 Saints
Korean 103 Saints

남경문 베드로

관리자 0 3285 0
신분 : 회장순교일 : 1846-09-20관련성지 : 포청옥

3232235521_IH6R84Se_e48f971447a515948b73396214694f248a54392e.jpg

 

서울의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남경문은 20세 때 교우 처녀 허 바르바라와 혼인하였는데, 큰 병에 걸려 대세를 받고 회복된 뒤 회장이 되었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었다가 배교하여 석방되고 나서는 첩까지 거느리고 3년 동안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다시 교회로 돌아와 김대건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받고 성체를 모신 다음 과거의 죄를 보속하고자 극기하고 인내하는 생활을 하였으며, 교우들에게 순교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1846년 병오박해가 일어나자 임성룡의 밀고로 체포되었다. 체포될 때 남경문은 금위영(禁衛營)의 군인 신분이었으므로 매우 혹독한 형벌과 유혹을 받았으나 모두 이겨 내고 마침내 9월 20일 6명의 교우와 함께 교수형을 받아 51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

0 Comments
정국보 프로타시오
관리자 0 0 0 21947 2017.01.16
신분 : 공인순교일 : 1839-05-20관련성지 : 포청옥정국보는 원래 개성(開城)의 유명한 양반 가문에서 출생하였으나 벼슬을 하던 조부가 죄를 짓자 부친과 함께 상민으로 신분을 감추고 상경하여 선공감(線工監)에서 일하며 미천하게 살았다. 30세쯤 천주교를 알게 되자 곧 입교하여 유방제 신부에게 세례성사를 받았고, 그 후로는 홍살문 근처에서 성사를 받으러 상경하는 시골 교우들을 돌보았는데 가난과 병에 시달리면서도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인내와 극기의 신앙 자세를 잃지 않아 모든 교우의 귀감이 되었다. 기해박해가 일어난 1839년 4월(음력 3월)에 밀고되어 아내와 함께 체포되었는데 포청의 형벌과 고문은 참아 냈으나 형조에서는 참아 내지 못하고 배교하였다. 그러나 석방되자마자 배교한 것을 뉘우치고 형조에 들어가 배교를 취소하며 다시 체포해 달라고 간청하였고, 그것이 거절당하자 5월 12일(음력 3월 그믐) 고문의 여독과 염병으로 들것에 실린 채 형조판서가 다니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형조판서에게 직접 자신을 체포해 줄 것을 요구, 그 날로 체포되어 5월 20일(음력 4월 7일) 포청에서 곤장 25대를 맞고 이튿날 새벽에 순교하였다. 그의 나이 41세였다.
Category
글이 없습니다.
State
  • 현재 접속자 282 명
  • 오늘 방문자 1,100 명
  • 어제 방문자 2,672 명
  • 최대 방문자 5,379 명
  • 전체 방문자 1,801,443 명
  • 전체 게시물 1,336 개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