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득인 베드로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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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권득인 베드로

관리자 0 3308 0

 

신분 : 상인순교일 : 1839-05-24관련성지 : 서소문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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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중 교우로 태어난 권득인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16세 되던 해에 어머니마저 여읜 뒤 혼인하였다. 

얼마 동안은 약장사를 하는 형과 함께 살다가 분가하여 성패(聖牌)와 성물(聖物)을 만들어 팔며 어렵게 생계를 꾸려 나갔는데 항상 새벽닭이 울 때 일어나 촛불을 켜 놓고 날이 밝을 때까지 기도하는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였다. 

권득인은 1839년 1월 16일 아내, 처남, 어린 자녀 등 4명의 가족 그리고 김로사와 함께 체포되어 포청과 형조에서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그의 신앙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뒤에 가족들이 배교하고 석방되자 권득인은 오히려 가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순교를 권하는 편지를 써 보냈다. 

그 뒤 5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고, 5월 24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 때 나이는 35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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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혁 다미아노
관리자 0 0 0 3292 2017.01.16
신분 : 회장순교일 : 1839-05-24관련성지 : 서소문 밖서울에서 태어난 남명혁은 젊어서 무뢰배들과 어울리며 매우 난폭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나 30세경 입교한 뒤로 모든 세속의 나쁜 일과 손을 끊고 오직 신앙 생활에만 전념하였다. 유방제(劉方濟)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더욱 열심히 살아 이광헌과 함께 회장으로 임명되어 예비신자를 모아 가르치고 병약자들을 방문하였으며 또 ‘성의회`(聖衣會)라는 신심 단체에 가입하여 신부를 도와 교회 일을 열심히 하였다. 그는 1839년 기해박해 초 한 예비신자의 밀고로 4월 7일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이 때 그의 집에서 제의류(祭衣類), 경본(經本), 주교관(主敎冠) 등이 발견되어 포청과 형조의 관원들에게 매우 혹독한 형벌을 당했다. 그러나 남명혁은 모든 고통을 참아 냈고, 함께 체포된 아내에게 “이 세상은 잠시 머무는 곳이고 우리의 본향은 천국이니 주님을 위하여 죽어서 광명한 곳에서 영원히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고 격려의 편지를 써 보낸 뒤 5월 24일 이광헌 등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평소 ‘성의회의 치명자 남 다미아노’로 불리기를 바랐던 남명혁은 한창나이인 38세에 자신의 뜻대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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