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서 베드로

Korean 103 Saints 103위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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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103 Saints

조화서 베드로

관리자 0 4938 0
신분 : 농부순교일 : 1866-12-13관련성지 : 숲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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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水原)에서 태어난 조화서는 1839년 기해 박해 때에 아버지 조 안드레아가 순교하자 충청도 신창으로 이사한 뒤 한 막달레나와 혼인하여 아들 윤호를 두었으며, 한때 최양업(崔良業) 신부의 복사 일을 맡았다. 1864년에 전주 지역의 교우촌인 성지동으로 이사하였고, 아내가 죽은 뒤 김 수산나와 재혼하였다. 1866년 병인 박해가 일어나자 12월 5일 아들 윤호, 이명서, 정원지 등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 감영 전면옥에 갇혔는데, 부자가 옥에서 순교를 다짐하며 서로 격려하였다. 아들과 함께 예닐곱 차례의 신문을 받은 조화서는 후손이 끊기는 것을 염려하는 척하며 배교를 권유하는 관장의 유혹을 뿌리치고, 12월 13일 5명의 교우와 함께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참수형을 받아 52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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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헌 아우구스티노
관리자 0 0 0 3499 2017.01.16
신분 : 회장순교일 : 1839-05-24관련성지 : 서소문 밖이광헌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여러 순교자를 낸 광주(廣州) 이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청년 시절에는 매우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나 30세경 입교한 뒤로는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여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거듭되는 박해로 가산을 전부 잃고 순교할 때까지 10여 년을 궁핍하게 살면서도 회장직에 충실하고 또 냉담자를 권면하고 병약자를 위로하며 외교인에게 전교하였다. 그리고 범 라우렌시오(앵베르) 주교와 신부들을 자신의 집에 맞아들여 교우들을 미사에 참여하게 하고 강론을 듣게 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 초 어떤 예비신자가, 체포된 자기의 아내를 석방시키는 조건으로 이광헌을 포함한 53명의 교우 명단을 포졸에게 건네 주어 이광헌은 4월 7일 전가족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으로 끌려갔다. 포청에서 형문(刑問)을 마친 후 4월 18일 형조로 이송된 그는 배교하면 가족들과 함께 석방시켜 주겠다는 형관의 유혹을 뿌리치고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아 온 몸이 피범벅이 되었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켜 냈다. 형조에서 혹형과 고문을 이겨 낸 뒤 5월 24일 남명혁(南明赫) 등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53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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